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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어느 XX 이야기

by 신형준

오늘 아침, 지인들과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대학 3학년에 올라가던 1986년.


동양사학과에 인문대 수석이 입학했습니다. (공동수석이 한 명 더 있었다는데, 그는 평론가 백낙청 선생의 딸로, 서양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과장이던 민두기 선생의 입장은 그랬다고 저는 봅니다.


장군이 될 놈과 하사관(요즘은 부사관으로 부름)이 될 놈은 애초 다르다.


저 정도는 부사관도 못 되는 사병 수준.


그 친구는 입학하면서 전공이 결정됐습니다. 민두기 선생은 “우리 과에 이슬람 등 서역 파트를 강화해야 하니 너는 그쪽을 전공해라.”고 권(사실은 명령)하셨지요. 박사는 하바드 대학에서 마칠 것도 그때 이야기하셨다고 하더군요.


제대하고 복학한 뒤 세 달 정도, 정말로 술만 마시고 놀다가 1988년 12월 13일부터 언론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6시 이전 기상, 학교 중앙도서관 7시에 도착. 밤 11시 도서관 닫을 때 귀가. 늦게 귀가하는 학생을 위해 학교는 본부건물에서 신림사거리까지 운행하는 무료 버스를 제공했지요. 그걸 타고 귀가하는 루틴의 반복.

언론사 1차 시험이 국어 영어 상식이니, 그것만 줄기차고 공부하면서, 때론 공부가 지루할 때 인문교양서를 읽곤 했습니다.


그때 접했던 게 루시앙 골드만의 ‘숨은 신’이었지요.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불문과 교수였던 김현 선생의 제자인 모 씨 등이 번역한 책이었지요.


다 아시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선에서 그 책을 굳이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유럽이 근대로 접어들던 16~17세기 무렵, 유럽은 절대왕정이 가속되고 있었다. 그런 신분체계 아래서 귀족은 실질적인 권한 약화(혹은 몰락)를 경험했고, 신흥 세력이라고는 하지만 절대왕정에서 신분 상승의 한계가 분명한 부르주아지가 존재했다. 몰락해가는 귀족과, 한계가 분명한 부르주아지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세계관을 갖기 힘들었다.

그 와중에 코르넬리우스 쟝세니우스는 종교 개혁의 움직임에 반대하며, 구원은 신의 예정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세계’라는 쟝세니우스의 주장은 몰락하는 귀족과 신분 상승의 한계가 분명한 부르주아지의 마음을 얻기 충분했다.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극작가 라신과 파스칼의 비극적 세계관은 그와 같은 정치 경제적 상황 아래서 탄생한 것이다.”


한데 이런 지적 배경을 전혀 모르는, 게다가 일본어를 중역했을지도 모를 번역문으로 이뤄진 그 책을 제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이해 못 하는 게 당연.


1960년대 70년대, 영어를 제대로 독해조차 못 하면서 겉멋에 빠져 시사주간지 타임지처럼 들고 다니던 사람들처럼, 그 책을 ‘들고만’ 다니던 1989년 상반기(1학기였던 것은 분명).


동양사학과 수석으로 입학해 어느덧 4학년이 된 그 친구가 “형, 이 책 좀 빌려주세요.”하더군요.


빌려주었지요.


그리곤 1주일 뒤, 그 친구가 책을 돌려주면서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냥 염화미소만 지었습니다.


당시 동양사학과는 공부를 많이 시키는 과로 학교 내에서 유명했습니다. 공부를 정말로 잘 하는 친구들은 학부생 때도 한문 중국어 일본어로 된 논문을 읽었어야 했으니까.


그 친구는 학과 공부를 다 하면서도 그 책을 읽고 이해를 한 뒤 저에게 말을 건넨 것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이 친구는 나와 지적 능력이 다르구나.’


그리곤 1년쯤 지났나.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러더군요.


“하버드 대학원에 가기 위해 GRE(대학원 입학 때 필요한 어학과 논리력 수리력 시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를 쳐야 하는데 2000점(만점은 2400점)을 넘어야 좋다고 합니다. 정말 힘드네요.”


저는 당시 GRE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 4.19 혁명선언문을 썼던 분이었지요.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분은 박정희가 발탁해서 주영 한국대사관 공보관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셨지요.


때문에 그 친구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영국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신입생 때 교양 영어를 가르치셨던 영문과 선생님(월북한 소설가 상허 이태준 선생의 조카였습니다.)이 “자네, 그 발음 계속 간직하게. 미국인들의 영국 영어 콤플렉스는 상당하다네”라고 할 정도였지요.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외국 생활을 했기에, 그 친구의 영어 실력은 뭐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요.


한데 그 친구가 ‘GRE 2000점’ 이야기를 듣자마자 냉소적으로 했던 말.


“웃기고 있네. 영어가 모국어인 애들도 1500점만 넘으면 수재라고 하는데, 한국인이 무슨.”


어금니에 낀 음식물을 검지로 파내면서 그가 보냈던 냉소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한데, 그 친구(인문대 수석 입학생), 2000점을 넘더군요. 석사 과정 공부를 다 하면서요. 저 정도 능력의 친구들은 열심히 ‘영어 공부만’ 하고도 1200점~1300점을 맞는 것 같았는데.


그때 다시 느꼈습니다.


100M 달리기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초대로 달리려면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기초 육상 육성을 아무리 외쳐도, 현재까지 100M 달리기에서 10초 안에 뛴 사람은 단 4명일 뿐입니다. 그조차 모두 9초 9대이지요. 서아프리카 후예들(미국과 자메이카 흑인들)과는 타고 난 게 다른 까닭입니다.


‘비극적 세계관’ 운운하다가 루시앙 골드만의 ‘숨은 신’이 생각났고 그 덕에 그 ‘어마어마한 쌍년’(영화 ‘도둑들’에서 전지현이, 자기가 넘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진 김혜수를 보면서 했던 대사)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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