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용한자 1800자도 모르면서 고대사 관련 서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
2017년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모든 기록’을 전수 조사한 뒤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삼국이 아니라, 삼한을 통일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논증한 책이었습니다. 신라인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통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이 생각한 ‘삼한’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를 이르는 지역, 즉 중국 사서에 맨 처음 등장했을 때의 ‘삼한’이 아니었습니다. 통일 이후 신라인들은,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 지역, 즉 자신들이 실제로 통합한 지역을 ‘삼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삼한’ 개념이, 통일을 이룬 신라인들에 의해 지리적으로 확대된 셈이지요.
이후, 한반도 정치 세력과 한반도에 거주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통합한 지역을 삼한으로 생각했습니다. ‘삼한’이라는 대명사는 1500년 이상 동일한 이름으로 사용됐지만, 삼한이 가리키는 지리적 영역은 점차 확대된 것입니다. 조선 이후, 삼한이 지금의 한반도로 확대 정착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제 책의 논지에 대해 신라사 전공자들이 제대로 반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신라인이 남긴 모든 기록을 하나하나 검토해서 논증했으니까.
여기서 고백 하나를 질문 형식으로 하면.
중고교 상용한자 1800자도 제대로 모르는 제가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기록’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인이 남긴 기록 상당수는 ‘한국고전종합DB’라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한글로 번역돼 있습니다. 특히 고려 초기 이전 기록은 100% 수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수가 많지 않으니까. 한국고전종합DB가 없었다면, 저는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당장 그 누구라도 ‘신라인들의 통경(統境) 인식(통일과 국경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한국고전종합DB를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 레거시 미디어의 몰락은 인터넷 발전 때문
저는 인터넷이 신문산업, 더 나아가 언론 산업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제가 신문사에 입사했던 1990년만 해도, 정부 기관의 보도자료는 언론사에만 제공됐습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정부 기관의 보도자료는 바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몇몇만 보고 나누던 민간 자료 상당수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됩니다. 기자가 아닌 그 누구라도, 해당 분야에 대해 깊게 연구한다면 기자 이상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정보를 해석한 뒤 이를 유통시킬 수 있는 세상입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에도 미국 농구-야구의 숨은 전문가들(소위 ’덕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할 ’매체‘는 지극히 제한돼 있었습니다. 이제는 유튜브 등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습니다. 이러니 기자나 언론사가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이죠.
◆ 과학 발전과 몰락하는 전문가 영역의 확장
오늘, 어느 기사를 읽으면서 ‘몰락하는 전문가 영역이 점차 확장되겠구나’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2025/12/10/20251210500005
요약하면 영국에서 어느 환자가 의원급 의사를 찾았다가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A.I.에게 물었더니 A.I.는 희귀병 가능성을 제시했고, 환자는 결국 대형병원을 찾아 병을 고쳤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전문적 분야로 치는 의료 영역마저 이렇게 됐습니다. 또 다른 최상위 전문 영역인 법률 영역은 이와 크게 다를까요?
정보를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이거나, 일반인들이 정보에 접근하기 힘들었을 때가 소위 ‘전문가’가 먹고 살기 편할 세상일 터. 이제 그 세상은 점차 종언을 고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바탕한 정보의 열림은 그런 점에서 ‘구텐베르크의 활자술 보급’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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