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입사 때, 지망 분야는 연극담당 기자였습니다. 어찌저찌 흘러흘러 문화재 분야를 맡다가 이른 나이에 기자를 그만두었지만.
잠깐 연극을 맡기도 했습니다. 1995년 상반기였지요.
윤석화 선생님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취재로든 사적으로 뵐 때든 ‘연극에 모든 것을 바친 분’이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고백하면, 인터뷰를 하실 때 ‘모놀로그’를 하신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때조차 단어 선택은 물론, 딕션 하나까지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치열한 삶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 부족한 탓에 제 연극담당 기자 경력은 4개월여에 그치고 말았지요. 그 뒤로는 그저 연극 애호가로 윤 선생님을 응원했습니다.
지금도 죄송한 것은. 연극담당 기자를 할 때 제가 결혼했습니다. 제가 당시 다니던 회사 지인으로부터 제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 선생님은 주변인들에게 이를 알리시면서 하객으로 와 줄 것을 부탁할 정도였습니다.(이 이야기를 타사 연극담당 기자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한데, 저는 윤 선생님을 포함해서 연극인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세금고지서’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윤 선생님이 무척 서운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윤 선생님 등 정말로 친분이 깊다고 서로 생각하는 연극인 몇 분에게는 알렸어야 했나, 지금도 간혹 ‘복기’해봅니다. 뭐, 정답은 없는 것이겠죠.
윤석화 선생님.
막내 동생을 대하듯 치열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주셨던 것, 지금도 감사히 생각합니다. 제가 못 난 탓에 선생님의 가르침을 삶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다시금 죄송합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갈 터. 그때 못 다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 도란도란 하시지요.
이제 편히 쉬소서. 후배 연극인들을 그곳에서 격려하시면서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47922?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