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임을 느낄 때
화장실 천장 등이 며칠 전부터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제 오전, 큰맘 먹고 제 손으로 등을 갈기로 결심했습니다.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등 덮개(커버)를 열어 보니... 천장과 등을 고정시키는 구조체인 브래킷(bracket)에 기판 같은 것이 고정돼 있었습니다.(이를 ‘모듈’이라고 부른다네요.) LED등. 중학교 때 공업을 배운 이후 ‘공(工)’과는 거리가 먼 인생인데.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 기판이 전등 역할을 하는 것일 터이니, 저것만 갈면 되는 것 아닌가? 기판은 브래킷에 십자 나사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드라이버라고는 안경테를 조이는 아주 자그마한 십자 드라이버뿐. 힘을 받지 못해 기판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집 근처 ‘다이소’로 달려가 드라이버 세트를 구매.
드디어 기판을 뜯어낸 뒤 제품 이름을 확인하고, 주변 대형 마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OO사 OO제품 팝니까?”
파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내 제일 자랑은 튼튼한 다리. 기판을 들고 무작정 집 근처 조명가게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이런 기판 파나요?”
사장 님은 저를 한말(韓末) 딸깍발이 바라보듯 ‘안타깝게’ 보더니 말했습니다.
“요즘은요, 그런 식으로 팔지 않습니다. 그냥, 전등을 커버까지 통째로 바꿉니다. 전등 자체를 일회용 소모품처럼 사용합니다. 그게 더 싸요.”
가격은 2만 원 대가 가장 싼 것이랍니다.
집으로 돌아와 쿠팡 등 인터넷 쇼핑몰을 확인했습니다. 숱한 LED등이 있었습니다. 가격은 1만원 대.
구매할까 하다가, 멈췄습니다. 인터넷 소셜 미디어에 오른 숱한 ‘LED등 셀프 교체기(記)’에 보이는 공통된 조언 때문이었습니다.
천장에 고정된 브래킷과 등이 ‘사이즈’가 맞아야 천장에 고정할 수 있는데(브래킷에는 긴 수나사가 있고, 이 수나사를 기판과 덮개에 관통시킨 뒤 암나사와 연결해 고정함),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브래킷을 설치하기 위해 천장에 구멍을 다시 뚫어야 한다는 겁니다. 천장에 구멍을 새로 뚫자니 드릴 같은 공구를 또 사야 할 것이고...
결국 브래킷만 놔두고, 이번에는 등 커버까지 들고 다시 조명가게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이 전등의 기판이나 커버의 구멍 간격과 같은 것을 살 수 있을까요?”
‘이 바보가 또 왔네’ 표정으로 사장 님이 하시는 말씀.
“같은 것은 없어요. 천장에 구멍 다시 뚫기 싫으면 제조사에 전화를 거셔서 같은 제품을 보내 달라고 하세요.”
“아니, 선생님. 나사 구멍의 간격만 같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등 덮개에 난 구멍을 가게 내에 있는 등의 구멍과 이리저리 맞춰보려니 사장 님이 다시 왈.
“아이고, 같은 것은 절대로 없어요. 그런 게 어떻게 규격화가 되겠어요.”
조명가게를 나온 것은 오후 4시쯤. 기판에 연결된 안정기(전류가 등에 안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에 제조사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었더니, “커버는 쓰셔도 되니까, 안정기와 모듈(기판)만 갈아라. 통장 송금을 하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가까운 동네면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여기, 경기도 여주예요. 지금 바로 보내면 내일에도 받으실 수 있어요.”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일...
화장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불편하다, 빨리 보내주셨으면 한다, 읍소에 읍소했습니다.
그렇게 배송비까지 포함해서 1만 3000 원을 송금한 시각은 어제(9월 21일) 오후 4시 30분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9월 22일) 오전 8시쯤, 우체국에서 알림이 왔습니다.
‘오늘 중으로 배달 예정.’
그리곤, 오늘 오전 11시 30분쯤 ‘배달 완료’를 알리는 연락이 왔습니다. 문밖에 나가보니, 딱...
등 교체는 정말 쉽더군요. 전기 두꺼비집을 내리고 등 커버를 연 뒤, 한 몸으로 돼 있는 기판과 안정기를 브래킷에서 내려오는 배선 두 가닥에 연결만 하면 끝. “달깍” 소리와 함께 찬란한 빛이 들어왔습니다.
아해에게 ‘화장실 등 갈았다’고 카톡으로 알리니, ‘아니, 벌써 (등이) 왔어?’
아해도 놀랐나 봅니다.
등을 갈고 물 한 잔 마시면서 든 생각.
우체국 집배원 님들은 이렇게 빠른 배송을 하시면서 도대체 얼마를 받으시는 걸까? 경기도 여주에서 인천의 최북단 어느 도농(都農)복합지역에까지 배달을 한 것인데, 배달에 걸린 시간이 고작 18시간 정도. 내가 지불한 총 가격은 1만 3000원이었는데, 여기서 기판과 안정기 가격을 제외하면, 과연 배송료 자체는 얼마였을까?
우체국 집배원 님들에게 사무치는 고마움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하긴, 이분들뿐일까요.
오늘 오전 6시쯤 산책 중에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이 지나갔습니다. 고약한 냄새. 코를 찡그렸다가 반성했습니다. 묵묵히 치우시는 환경미화원 님들과 눈이 마주친 뒤.
대한민국에는 정말로 ‘고마운 분들투성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