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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Nov 22. 2023

의협, 제발 파업 대차게 하시고, 법에 따른 ‘심판’

-의협에서 이사로 일했던 이가 의협을 혐오하는 까닭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또다시 파업 운운하고 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준법 진료’일 것이다.)      


 제발 부탁드린다. 지난 2020년처럼 파업하다가 ‘회군’하지 말고, 제발 대차게 끝까지 파업 대열을 유지하기를 빈다. 그리하여, 법에 따른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 제발 끝을 보았으면 한다. 위법성이 없다면 처벌받지 않을 것이고, 위법성이 있다면 처벌받으면 된다.      


20년 파업 때 의대 졸업생들이 의사 자격 시험을 거부했다가 바로 재시험을 치를 기회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선처’가 없었으면 한다.      


 고백하건데, 당시 ‘의대생 재시험 기회를 한 번 달라’는 언론 기고문을 어느 의사가 나에게 간절히 부탁해서 그 의사 이름으로 대신 쓴 일이 있었다. 두고두고 그 일을 후회한다.      


 의대생들도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면, 제발 이번만큼은 대차게 끝까지 의사 시험 거부를 하시라. 만약 당신들이 의사 시험을 또다시 거부한다면,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재시험 기회를 바로 주어서는 안 된다’는 청원을 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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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서 2018년 5월 ~ 2020년 2월까지 일했다. 18년 5월, 홍보 및 공보 이사가 됐다. 대통령 탄핵 뒤 우파가 지리멸렬하던 시절, 우파 의사가 의협 회장에 당선됐을 때 미력하지만 우파의 재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도저히 이런 사람들과는 일을 함께 못 하겠다’는 생각은 일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서였다.      


우파의 재건? 우파 혐오를 일으킬 집단이었다.     


의사라고 왜 좌파가 없겠나. 하지만 그 어느 사회든 가진 자, 힘 있는 자는 우파로 보이게 마련이다. ‘강남 우파’라는 표현은 없지만, ‘강남 좌파’라는 표현이 있는 이유이다.      


한국 사회에서, 직업적으로 가장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이 ‘우리는 희생당하고 있다’며 수가 30% 인상을 외쳤다.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국민은 싼값에 의료를 받고 있다면서.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묻자.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에 ‘연 소득의 6배가 넘는 돈’을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로 강제로 걷는 나라가 있나? 우리나라는 그렇다. 아니, 내가 그랬다. 농민으로 버는 연 소득이 50만 원이 안 됨에도, 나는 연 300만 원을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로 강제로 내야만 했다.(나는 지난 16년 간 정기건강검진도 받지 않을 정도로 병의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철저히 사회주의적이다. 박정희가 애초 그렇게 설계했고, 전두환을 거쳐 노태우가 완성시켰다. 그 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때문에,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낸 돈’과 ‘받은 혜택’을 생각할 때 많은 이들에게 ‘복지’이지만, 일부에게는 ‘가혹한 세금’이다. 시니피앙(명칭)은 보험이지만, 시니피에(의미)는 재산이나 소득에 따라 제각각인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무조건 수가를 인상해서 의사 소득을 높여야 한다고?     


의협에 들어가서 한참을 설득했다.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수가 30%를 인상하면, 그 돈은 누가 대느냐고. 헬조선인 이곳에서 고생하는 것은 당신들만이 아니라고.     


당신들 논리대로라면, 범죄 검거율이 세계 최고이면서도 각종 시위나 집회 정리 등에 자주 동원되는 경찰의 월급도 확 높여야 한다고.     


교사들이 밤 10시까지 야자 감독을 하면서 개고생하는 나라는 없으니 교사들 월급도 확 높여야 한다고.     

국정 감사 때 중앙부처 사무관 이상급은 밤 12시 퇴근을 밥 먹듯 하니, 이들의 월급도 확 높여야 한다고.     


4000원만 주면 우체국에서 전국 대부분 내륙 각지로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이렇게 빨리 전달되는 택배 시스템은 전 세계 그 어디에도 없으니 우편 배달부 선생님들 월급도 확 높여야 한다고.     


외식비가 높아졌다지만, 미국이나 영국, 일본에서 ‘조리된 외식’을 1만 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은 없으니(팁 포함), 당신들 논리대로라면 외식비도 확 높아져야 한다고. 그래야 요식업 자영업자들이 살 수 있다고.     


전 세계 인구밀도가 60명인데, 대한민국은 531명이라고.(미국 30명 선, 일본 350명 선, 그 인구 많은 중국 150명 선, 유럽 선진국 200여명 선. 세계은행 통계.) 그러니 한국에서 ‘사람값’은 쌀 수밖에 없고, 의사 역시 기본적으로는 예외가 아니라고... 의사 당신들도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니, 자기 자식이 공부 잘 하면 의대 보내려는 것 아니냐고. 의사들 먹고 살기가 ‘헬조선’에서는 가장 좋다는 것을 당신들이 가장 잘 아니까.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의협 집행부 관계자는 거의 없었다.      


여전히 수가 30% 인상을 이야기했고, 파업을 이야기했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연예인들도 1년에 수 십 억을 벌고, 운동 선수도 수 십 억을 버는데, 의사들은 ‘고작’ 3억 원도 못 번다고 이야기하는 의사들도 있었다.      


철없는 집단. 고교 때 야구 하던 운동선수가 야구로 평균 얼마를 버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유재석 같은 이만 연예인으로 생각하는 지적 정박아. 동네 캬바레에서 밴드 연주하는 이도 연예인인데, 그들은 얼마를 벌까?     


의협에 있으면 있을수록 신물만 났다. 이사로 일한 지 두 달 만에 사표를 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의협에서 자문위원으로라도 일해달라고 부탁하기에, 마지 못해 홍보 및 공보 자문위원으로 20년 2월까지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후회막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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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의대를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우파들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반대했지만, 나는 찬성했다. 문재인이 하니까, 좌파가 추진하니까 반대한다는 식의 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혐오한다.      


대도시는 의사나 병의원이 모자라지 않는다. 인천의 도농복합지역에 사는 나조차 큰길만 나가도 병의원은 차고 넘친다. 의사나 병의원의 모자람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물론 수술을 맡는 외과나 산부인과 등은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인구가 소멸되는 지방은 어떨까?     


솔직히 나라도 현재 같은 경우라면 외과나 소아과를 전공하지 않을 것이다. 대도시 동네 의원으로 감기나 치료하고 점이나 빼고 있을 것이다.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다. 직업이든 투자든, 입력 대비 출력을 따진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누가 소송까지 감수할 수도 있는 수술을 맡으려고 할 것인가? 의사 평균 연봉이 20년 기준 2억3069만원이라는데(보건복지부 통계), 누가 3억 원을 받고 낙후지역인 지방에서 일하려고 하겠는가? 자녀 교육이나 문화 등에서 대도시에 한참 밀리는데.     


2020년이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같다. 외과나 산부인과 소아과 등 특수 직역, 그리고 병의원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특정 지역의 의료를 전담할 의사를 ‘따로 뽑자’는 것이다. 그 시니피앙이, 공공의대든 공공의사전문원이든 상관이 없다. 평생 ‘해당 직역과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뽑아달라는 것이다.     


직업 선택이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고? 교사든 군인이든 공무원이든, 국가가 명하면 ‘그곳’에서 ‘그 일’을 해야만 한다. 특정 직역이나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기관을 나왔다면, 평생 해당 지역이나 해당 직역에서 일하라는 것이다. 물론 귀하가 LA에 살든 어디에 살든, 그건 노 상관이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직역에서 일하라는 것이다. 싫다면 의사를 그만두면 되는 것이고.     


물론 ‘일반의대’는 그대로 두자. 일반의대 졸업생들이 서울에서 피부미용을 하든 뭐를 하든 상관 말고.      


20년, 공공의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의사들은 이런 고민을 국민과 나눴어야 한다. 그들은 무조건 반대만 했다. 파업도 불사했고. 의협에 대한 내 혐오는 그때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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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표현만큼 ‘미화’된 표현도 없다고 본다. 우리가 ‘귀족정’이라고 폄하하는 aristocracy는 어원적으로 보면 ‘뛰어난 자들의 지배체제’이다. democracy는 ‘뛰어나지 않은 자들의 지배체제’이고.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가장 모순이 적기에 전 세계 그 어느 정체(political entity)든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다수의 지배체제’이다. 당신보다 못났을지도 모르는 ‘다수’의 의견을 일단 경청할 수밖에 없는 지배체제이다.     


그 점에서 묻는다. 의사들 당신은 대중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갈라파고스에서 아일랜드 멘털러티에 허우적대며, 하고한 날 포퓰리즘을 비난하면 당신들 이야기를 과연 누가 들어줄까? 당신들은 걸핏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를 베네주엘라의 퍼주기식 정책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기본적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퍼주기식인지, 아니면 소비에트의 영향력이 커질 때 자본주의를 구했던 케인즈나 뉴딜 식의 복지경제정책인지 당신들이 어찌 그리 확신하는가? 고칠 게 있다면 고치면 되는 것이다. 무조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게 적절한 태도인가?     


당신들의 고립은 당신들이 자초했다.      


그래, 파업을 하시려면 하시라. 한데 이번에는 제발 대차게, 치열하게 하시라. 중간에 회군하지 마시고. 제발 끝을 보자.     


민주주의는 결국, 많은 이를 누가 얻느냐로 결판난다. 과연 의사 집단이 민심을 잡을 수 있을까?      


추신.     


20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참 하는 나를 보면서 의사 그 누군가가 말했다. “연예인하고 의사 걱정은 하는 게 아닙니다.(당신 앞가림부터 하쇼. 의사들은 누가 뭐래도 당신보다 경제적으로는 잘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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