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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Sep 16. 2024

‘마장개’를 아십니까?

-서울 문창초등학교 교가를 듣노라니...

어젯밤(24년 9월 15일), 절친한 고교 동창과 통화하다가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사람에게 가장 그리운 시절...     


그는 요즘으로 치면 서울시 구로구에 있는 몇 학교를 거쳐 3학년 때쯤 서울 문창국민학교로 전학해서 그곳에서 졸업(1978년)했습니다.       


서울 문창국민학교.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한때 기네스북에 ‘전교생이 가장 많은 학교’로 등재됐던 곳. 이 학교는 소풍 때마다 비가 왔다는데, 학교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시던 ‘소사 아저씨’가 어느 날 땅을 파다가 삽으로 이무기를 죽였기 때문이라는 학교 전설이 1970년대에는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교가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바로 교가를 불러주었습니다.       


바라보니 줄기찬 관악산 모습 / 굽어보면 마장개 자유의 노래 / 이 고장을 빛내리 배움의 동산 / 자라나는 새싹들은 우리 문창교     


마장개? 마징가(1970년대 일본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로봇)는 알겠는데, 마장개?     


“문창초등학교 앞에 조그만 내가 흐르는데 그 이름이 마장개였대.”     


“그래? 몰랐다. 마장개가 요즘은 도림천으로 불리는데.”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제가 아주 어릴 적에는 행정 명칭이 영등포구 대방동이었지요)에서 2세 이후 근 30년을 살았지만, 도림천의 옛 이름이 마장개였다는 사실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통화를 마친 뒤 네이버에서 ‘마장개’를 검색하는데, ‘마장기’로 검색한 결과가 우선 나왔습니다. 검색할 단어를 잘못 입력했을 때 종종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이상하다 싶어 문창초등학교 교가를 검색하니 친구가 불러준 교가와는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평소 기억력을 아는 저로서는 당황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가를 잊을 친구가 아니거든요.     


뭐가 잘못됐나 더 확인하고 싶어서 ‘마장개, 신대방동’으로 검색하니 서울 영등포문화재단에서 2021년에 발간한 ‘도림천 생태, 문화적 조사 연구’라는 보고서가 유일한 검색 결과로 나왔습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www.ydpcf.or.kr/data/files_202210/1662367685bHdl0YDR.pdf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니 42~44쪽에 도림천 명칭의 유래가 적혀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관악산에서 발원해서 안양천으로 합류하는 하천(=현재의 도림천)의 이름이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899년 발간된 ‘시흥군읍지’이다. 현재 구로 1교로 불리는 곳 주변에 ‘마장천교(馬場川橋)’라는 다리 이름이 ‘시흥군읍지’에 실린 지도에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 내는 ‘마장천’으로 불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리 불린 이유는 이곳 주변에 말을 키우는 목장(=마장 馬場))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도림천은 경관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자연하천이었다. 1963년 이후, 도심지 불량주택 철거민과 수재로 인한 이주민의 유입이 계속되면서, 하천 변에 주택군이 형성됐고 하천구역은 점점 축소됐다. 1970년대 들어, 도시개발사업으로 토지구획정리와 천 주변에 주택지 조성사업이 이뤄지고, 관악로와 신림로가 확장되면서 하천 복개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도림천은 자연하천의 기능이 현저히 훼손됐다. 1984년 지하철 2호선 개통에 따라 하천 중앙에 지하철 노선이 위치하면서 하천 본래의 모습은 거의 상실됐다.      


문창초등학교 교가에 등장하던 ‘마장개’가 교가에서 사라진 이유가 그제야 선명히 이해됐습니다. 


문창초가 개교하던 1945년, 마장개는 풍광이 수려한 하천이었을 겁니다. 이후, 인구가 유입되고 복개 과정을 거치면서 하천 풍경은 제 모습을 점차 잃었습니다. 여기에 서울 2호선 전철이 마장개를 지상으로 지나면서 마장개는 제 모습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겠지요. 제 친구가 졸업(1978년)한 이후 그 어느 시점에서, 문창초에서 ‘굽어보니 마장개’라는 가사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됐고, 교가 역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마장개와 도림천의 명칭을 비교하면, 도림천이 ‘행정적 명칭’으로는 훨씬 어울릴지 모르나, ‘마장개’라는 옛 이름이 주는 푸근함은 없는 듯합니다. 순 우리말인 ‘개’의 본뜻이 ‘강이나 내 중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바다가 만조일 때 마장개 일부 지역에도 바닷물이 들어왔으니까요.     


물론, 도림천보다 마장개를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퇴행적 사고’에 익숙한, 혹은 과거 회상을 즐기는 저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사라져간 모든 것은 아름답다.’(네델란드 문화역사가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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