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로의 증여에 '관대'해지기를 바라면서...
여기, 서울 강남구에 사는 아버지(엄마라고 생각해도 무방) A와 B가 있습니다.
두 분은 20대 중반인 자녀를 하나씩 두었습니다. 두 자녀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공부를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지도 않았고요. 한데,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두 사람의 철학은 달랐습니다.
A는 ‘교육만이 신분 상승 및 유지를 가능케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아이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칠 12년 동안 A는 자녀의 사립학교 및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로 해마다 1억 원 이상씩을 부쳤습니다. 총액은 최소한 12억 원 이상입니다.
B는 “공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자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했습니다. 사교육도 전혀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액세서리 가게에서 3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빡세게’한 뒤 이런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고 하자 12억 원을 빌려줬습니다.
양육비라는 측면에서 보면, A와 B의 총액은 같습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인플레이션이나 기회 비용까지 생각하면 A가 더 쓴 겁니다. A는 12년 전부터 해마다 1억 원씩을 쓴 셈이니까... 12년 전의 1억과 지금의 1억은 가치가 다르니까.
하지만 증여세라는 측면에서 A와 B는 판이합니다. A는 증여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습니다. 자녀가 미성년자거나 생계 수단이 없는 대학생일 때 국내외에 지불한 학비나 생활비는 ‘증빙 서류’만 갖추면 증여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반면 B는 ‘10년마다 증여할 수 있는 최대액 5000만 원’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 증여세를 내야 합니다. 현행 증여세는 10년 단위로 무상 증여할 수 있는 5000만 원을 제외하면, 1억 이하일 때 증여액의 10%, 5억 이하 20%, 10억 이하 30%, 30억 이하 40%, 30억 초과 50%입니다. 쉽게 말하면, 1년 당 500만 원까지 무상으로 증여할 수 있는 셈입니다.
B가 증여세를 내지 않고자 한다면, B와 자녀는 차용증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차용증에는 이런 내용이 반드시 적혀야 하고요.
‘5000만 원은 증여한 것으로 하고, 나머지 11억 5000만 원 중 2억 원까지에 대한 이자는 조세 통념상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자는 지급하지 않는다. 다만, 나머지 9억 5000만 원에 대해서는 연 4.6% 이자를 실제로 지급한다.’
물론 차용증을 이리 적고 이자를 실제로 지급했더라도 세무당국에서 이 돈을 부모 자식 간 채무로 봐 줄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편법 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물릴 수도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A와 B가 똑같이 자녀에게 12원 억 원을 썼다면(아까도 말했든 인플레이션이나 기회 비용을 생각하면 A가 무조건 더 쓴 것임.) 증여세 액수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돈을 쓴 곳’이 달랐기에 증여세의 운명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겁니다.
증여세나 상속세가 도입된 본질적 이유는 부(富)가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기 위함일 겁니다. 이를 통해 그 나라의 안정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일 것입니다. 소득이나 재산에 누진 세제가 도입된 이유도 빈부 격차 해소를 통한 사회 안정화 전략이듯이요.
증여나 상속에 누진제를 도입한 것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유별나게 교육에 들어간 비용에 대해 ‘관대’한 것을 고치자는 겁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교육비에 관대한 만큼 자녀가 사업을 하려고 할 때 든 비용 등에도 ‘관대’해달라는 겁니다. 예, 젊은 세대에 대한 증여에 조금 더 관대해지자는 겁니다.
왜 교육비는 얼마가 들어가든 증여세나 상속세에서 과세 대상이 아니고, 자녀가 사업을 하려고 할 때 지원하려면 득달같이 증여세 등을 고액으로 물리려고 합니까? 이 나라는 여전히 사농공상의 나라인가요?
사정이 이러니, 돈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외국에서 자녀들을 교육하려는 겁니다. 어차피 나중에 증여세나 상속세를 왕창 물 바에는, 교육비로 써서 자녀의 신분을 상승시키거나 유지하려는 겁니다.
물론 젊은 세대에 대한 증여에 ‘관대’해지는 정책을 펼 때 비난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빈부 격차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사실상 신분 세습제가 굳어질 것이다.”
예, 그런 비판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도를 계속 유지하자는 겁니까?
해외에서 주야장천 10억 원 이상을 교육비로 쓴 사람은 단 한 푼도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자식이 소규모 점포를 차릴 때 1억 원이라도 빌려주려고 해도 차용증을 써야 하는... 그 돈 액수가 3억 원이 되면 부모 자식 간이라도 이자를 받아야 하는?
만약 증여세 부과에 ‘관대’해지기 힘들다면, 교육비에도 그 같은 ‘엄격함’을 보여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비만큼 신분이나 계층 세습에 강력한 도구나 촉매가 어디 있나요? 그러면, ‘쓸데없는 조기 유학이나 연수’ 비율도 줄어들 겁니다. 국부 유출을 막는 셈이라고 할까요.
이는 비단 해외 유학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국내 사교육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서울 강남구에서 평균 사교육비는 얼마일까요? 그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들어간 교육비는 도대체 얼마일까요?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고액의, 공교육을 압도하는 사교육’을 받는 아이의 장래와, 그런 것을 전혀 받지 못한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10억 원 이상을 써도 그것이 교육비면 증여세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공교육으로만 자란 젊은이가 부모로부터 몇천만 원이라도 빌려야 할 때 차용증을 쓰도록 만드는 현실. 저는 이해 불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