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걷기 여행 중입니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이 있어서요. 여행 첫날 밤, 숙소에서 빈둥거리며 지인들의 소셜 미디어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지인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링크한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해저 수온의 급격한 상승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기사 맨 앞에 등장하는 사진 설명부터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이 문장입니다. (사진 1)
A bleaching coral is seen in the place were abandoned fishing nets covered it in a reef at the protected area of Ko Losin, after a group of volunteer divers and the Coastal Resources Research Center, helped by the Royal Thai Navy, removed 2,750 sq m of them, Ko Losin, Thailand June 20, 2021. Picture taken June 20, 2021.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문장 주어가 ‘A bleaching coral’인 것은 알겠는데, 동사(구)가 ‘is seen’인지 ‘were abandoned’인지 영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동사가 한 주어 밑에 ‘and’로 연결돼서 두 개가 쓰일 수도 있겠지만, 이 문장은 그렇게 해석되기는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비문(非文) 아닌가?’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이해 불능.
다시금 드는 자괴감.
‘학력고사 때도 영어 고자였는데 (단일 과목 중에서 가장 많이 틀린 게 영어였습니다.) 그 실력이 어디 가겠어? 이럴 때는 chat gpt이지, 뭐...’
문장을 복사해서 chat GPT 3.5 무료 버전에 물었습니다. 정말로 1초도 되지 않는 시점에서 놈은 바로 답을 주었습니다. (사진 2)
결론만 이야기하면, ‘were abandoned’가 아니라 ‘where abandoned’가 돼야 한답니다. 기자가 기사 작성을 하면서 ‘h’를 빼먹은 것이지요. 탈자(脫字).
그제야 저 문장의 뜻이 제대로 다가왔습니다.
역쉬 chat GPT여.
그런 고마움도 잠시. 어느새 무서웠습니다.
잘 아시듯, chat GPT는 ‘언어에 기반한 a.i'입니다. 때문에 말과 글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물론 범용 지식-generative knowledge-전반에서는 a.i가 아직은 인간에게 밀린다고 저는 봅니다. 비범용 nongenerative 분야에서는 이미 인간을 압도했지만.)
아무리 제가 영어 능력이 ’고자 수준‘이라고 해도, 1978년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이후 거의 50년 간 그래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습니다. 그런 인간이 한참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단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탈자로 인한 비문이다‘라고 즉각적으로 규정하는 이놈의 언어 능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요?
더 나아가.
무료인 챗 지피티 3.5도 이럴진대, 현재 유료 버전인 4.0의 능력은? 앞으로 나올 5.0 혹은 6.0은?
A.I.의 능력이 진화를 거듭해서 ’양자 도약‘에 이르든 ’임계점‘을 넘든 해서 범용 분야까지도 인간을 넘어선다면 그때는 어떤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어젯밤, 영어 문장 해석으로부터 시작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홀로 걷는 여행자의 외로움을 달래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