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야말로 “OTT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7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가 OTT 영화라는 한계점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가히 진일보한 성장세라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 무엇보다 작품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5년 새 괄목할 만한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급성장에는 넷플릭스와 애플티비, 후발주자 디즈니 플러스까지 가세한 삼파전 구도가 한몫했는데- 이는 넷플릭스의 <파워 오브 도그>, 애플티비의 <코다>, 디즈니 플러스의 <엔칸토>가 사이좋게 유력 후보작을 내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작 출시와 유수 영화제 노미네이트 양 측면에서 유연성을 거머쥐게 된 셈이니 감독이나 제작진, 투자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드니 빌뇌브 감독
물론 이러한 영화계 흐름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감독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드니 빌뇌브’ 감독이다. 그의 신작 <듄>이 코로나 압박에 못 이겨 HBO MAX에 공개되기로 결정됐을 당시,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OTT 시장에 안티 의사를 표한 바 있다. 배급사가 영화관과 관객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다- 3년 이상 공들인 작품의 영상과 사운드를 질 낮은 OTT 서비스로 접해야 하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전 세계 영화인들로 하여금 영화 제작 의지를 꺾는 처사다-라고 항의하면서 말이다.
그의 격한 반응 덕분에 극장과 HBO 동시 개봉이라는 이례적 절충안이 동원되긴 했지만 정통파 감독의 상처뿐인 영광도 영광은 영광이었다.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다시피 한 건 다름 아닌 <듄>이었으니까. 10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6개 부문 수상, 올해 최다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둔 것으로 OTT에 대한 그의 격렬한 거부반응이 조금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듄>의 성적보다 <코다>의 쾌거를 보고 ‘OTT 만만하게 볼 게 아니네’ 싶었을지도 모른다. 오스카의 꽃인 작품상 주인공이 애플티비의 <코다>로 낙점되었지 않은가!
영화 <코다> 속 주인공 가족
사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코다>의 작품상 수상에 회의적인 입장이었기에 드뇌 빌뇌브만큼 떨떠름한 기분인 게 사실이다.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이란 사실이 영 석연치 않았달까. 아무래도 최초로 영화화되는 작품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라 각색 영화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럼에도 이변은 일어났고 원작을 뛰어넘는 연출력으로 각색상과 작품상, 남우조연상- 3관왕에 빛나는 기염을 토했다. 가히 리메이크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겠다.
<코다>의 성과가 어쩐지 마뜩잖은 분 계시다면, 남우조연상 수상소감 장면을 찾아보시길 권한다. 극 중 여주인공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트로이 코처"가 본 상의 주인공인데, 그는 알려진 바와 같이 청각 장애인이자 농인이라는- 연기자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핸디캡을 가진 배우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농인 남우조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뒀으며, 상당히 오랫동안 회자될 감동적인 순간까지 선사해주었다. 그 순간을 되새기고 있노라면, ‘그래, <코다>도 참 좋은 작품이지.’ 하는 - 한결 유해진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트로이 코처와 윤여정
시상대에 오른 2021년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이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너스레를 떨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가슴 찡한 눈물 주의보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가 트로이 코치 이름을 "수/어"로 발표하는 순간, 장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북받쳐 오르는 눈물로 가득 차올랐다. 개인적으로 시상식 통틀어 그의 수상 소감이 가장 감명 깊었기에 그중 한 대목을 소개해 본다.
“얼마 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 책을 읽었는데,
거기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최고의 감독은 최고의 커뮤니케이터이다’-
시나리오 70프로가 수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숀 헤이더 감독은 실제로 수화를 배워서
현장지휘를 했습니다.
아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였죠.
아... 제 삶에 가장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저희 아버지셨습니다.
그는 제게 최고의 수화 기술자셨어요.
차 사고 이후 전신마비를 겪으며 더 이상
수화를 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언제나 훌륭한 소통자였죠.”
연단에 올라 수어로 소감 발표를 하는 동안, 그는 시종일관 겸손과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지를 회상할 때마저 의연했다. 장애인이라는 한계가 더 이상 한계로 작용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한 인간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 세계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