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음악을 느껴, 펑크잖아!

백예린 - MIRROR

by embrace

엘리베이터 옆 비상구 문을 벌컥 열어 계단으로 향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난 분명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토하고 제출하라고 했어.

네가 잘못 들어놓고서는 누구 탓을 해?"

"참나.. 회사 생활 하루이틀 하나. 저렇게 눈치도 없고 멍청해서야.. 쯧쯧"


한 칸씩 내려가는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조금씩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2층 화장실에 도착할 때까지는 일단 호흡도 가다듬고 얼굴 표정도 다듬어야 한다.

4개 층을 내려가는 동안 계단에서 누구를 마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 유지한 채 계단을 내려갔다.


2층에 도착해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섰을 때 다행히 사람이 없었다.

재빨리 화장실에 들어갔다. 개수대와 화장실 칸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 층에 들어와 있는 사무실들은 고객들이 직접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기에, 직원들은 항상 어딘가에 숨어있다. 일할 때는 사무실에만 있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다른 층으로 가거나(화장실에서까지 고객에게 붙잡혀 불만을 듣고 싶지는 않을 테니), 잠깐 쉬고 싶으면 옥상으로 올라가 쉬거나 담배를 태운다. 덕분에 2층 화장실은 때때로 오가는 민원인 외에 이용자가 별로 없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내려와 욕을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나 정도일까?


제일 안쪽 칸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았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켰다. 무슨 노래로 심신을 달래야 하나, 어떤 노래를 들어야 아까 들은 김 과장의 쌉소리가 씻겨 내려갈까 한참을 배회했다. 그러다 어떤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손으로 총을 만들어 쏜 뒤 후 하고 불고 있는 듯한, 시크 도도해 보이는 썸네일이었다. 마침 예전에 종종 들었던 백예린이었기에 한번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클릭했다. 클릭하자마자 들리는 베이스 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듬과 백예린의 목소리, 그리고 권해효 아저씨의 표정까지 초반부터 눈과 귀가 사로잡혔다. 펑키한 리듬에 맞춰 어정쩡하면서도 나름의 느낌에 심취해 춤을 추는 권해효 배우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울렁임이 느껴졌다.


Don't look at yourself in the mirror

Just feel the music

It's funk

All these mo'fuckers

Get yourself on the floor

Music's gon' be here all night

Till I let'em to stop


나도 모르게 스르륵 변기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고 두 팔을 벌서는 듯 머리 한 뼘 위로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팔과 몸을 살짝씩 틀어 움직였다.

이어서 나오는 트롬본인지 색소폰인지 모를 악기의 소리에 짜릿함이 올라와 몸의 각도를 더 틀어 움직였다.

왼쪽 팔이 화장지 통에 부딪혔지만, 아프기보다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물리적인 공간이 화장실이라는 것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금 오른쪽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느끼며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클럽 한번 가본 적도 없지만, 2층 화장실의 맨 안쪽 칸이 지금 나에게는 그 어떤 유명한 곳보다 재밌고 즐거운 클럽이었다.


2절 후렴에 들어가려던 즈음이었을까? 이어폰 꽂지 않은 왼쪽 귀로 인기척이 들렸다.


"어어, 일 다 봤다. 내 인자 그리로 갈라꼬. 니는 어디쯤이고? 거의 다 왔나? 아, 맞나?"


2층 사무실을 방문한 고객인가 보다. 볼일 보고 빨리 나가줬으면 했는데, 아주머니의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나도 더 오래 자리를 비우고 있을 수는 없으니, 슬슬 올라가 봐야 했다. 음악을 끄고 정리하고 나왔다.

계단으로 가 한 칸 한 칸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일이 분명 더 고되야 하는데, 왠지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 순간적으로 내가 붕 떠 있나 착각이 들었다. 경쾌하게 올라와 사무실로 돌아왔다.


방금까지 멍청한 얼굴로 휴대폰이나 보고 있었던 김 과장은 나를 보자마자,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보고서를 다시 수정해서 자신한테 먼저 보여달라고 했다. 방금까지 클럽에 있다 온 나는 산뜻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을 했고, 김 과장은 예상외로 밝은 내 목소리와 모습에 흠칫 놀란 듯했지만, 별말 없이 다시 휴대폰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머릿속으로 베이스 소리와 리듬을 그렸다. 남들이 눈치 못 채게 테이블 아래 발로 리듬을 타며 파일을 열었다.


까짓 거 뭐, 한번 더 수정해서 보여준다 그래.


오늘은 왠지 퇴근하는 발걸음까지 가벼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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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의 MIRROR라는 노래를 들었고, 이걸로 어떻게든 글을 써보고 싶었다.

순간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감상과 느낌은 있었는데, 도무지 생각이 엮이지 않고 글로 써낼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뭐라도 써야 하는데, 하고 고민하던 순간 "just feel the music. It's funk"라는 구절이 귀에 쏙 들어왔다.


그래, 그냥 느껴.


그 순간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춤을 추며 혼자 심취해 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단순히 춤추는 게 아니라, 이 춤추는 행위로 쾌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느껴지려면 언제 춰야 할까? 어떤 때에 그런 감정이 들까? 생각하다 보니 회사가 떠올랐고, 회사에서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춤을 추려니 화장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짧은 소설 글이었다.


이 노래를 몇 번 더 들으면 어떤 감상이 또 생기고, 어떤 느낌이 또 들지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 느껴지는 감상과 감정으로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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