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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

by 서은

나는 오래전에

벌써 다 쓴 줄 알았다.


삐뚤빼뚤한 문장,

잉크 번진 고백들,

지워지지 않는 오점들.


그건 책이라기보다

쓰레기통에 던져진 초안 같았다.


다시 쓸 수 없는,
재활용 불가능한 인생.


그런데,
하나님이 내 책상 위에 오셨다.
아무 말 없이 내 찢어진 종이를 펼치시더니
그 위에 쓰셨다.

“첫 페이지.”


그 순간,

검은 잉크가 눈부신 빛으로 번졌다.
지워지지 않던 죄의 흔적이
은혜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쓰는 중이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
끝모를 현재진행형의 문장.


내 인생의 첫 페이지는,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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