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 짧은 찰나..

온유함을 선택하지 못한 미성숙함을 깊이 반성.

by 서은

오늘 새벽 6시 반부터 병동 바이탈 라운드를 시작했다.

평소처럼 정해진 순서 없이,

밤에 아프다고 하신 환자분들이 계신 방을 우선으로 돌았다.


어제 첫 번째로 방문했던 302호는 오늘 맨 마지막에 가게 되었다.

다른 방에 급하게 돌봐야 할 아픈 환자분이 계셨고,

그분께 주사도 놔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302호 문을 열자마자,

3일 전 새로 입원하신 유O자 어르신께서 갑자기 역정을 내셨다.

"다리도 아프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왜 이제 오냐"며,

기다리느라 화장실도 못 갔다고 화를 내셨다.


다른 곳에 아픈 환자가 있어서 그 방을 먼저 돌았다고,

혼자 근무하기 때문에 아픈 환자 위주로 돌아서

정해진 시간에 올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화장실 다녀오고 싶으시면 먼저 다녀오셔도 되요.

자리에 안 계시면 다시 올께요 "라고 말씀도 드렸다.


하지만 어르신은

"정해진 시간에 와야지, 왜 정해진 시간에 못 오냐. 나도 환자인데"라며 계속 언성을 높였다.


그러더니

"아침 식사 시간이랑 바이탈이랑 겹치면 어쩔 거냐"고 따져 물으셨다.

"이제까지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라고 설명드렸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너무 답답했다.

버스에서 젊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다고 호통치는,

꼰대 할아버지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똑같이 반응해버렸다.

감정이 올라와 목소리를 높이며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환자의 분노에 나의 감정이 섞이는 순간,

환자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미성숙함이 드러난 것이다.



데스크에 앉아 차팅을 하려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차트를 보니 어르신은 80세였고,

큰 병원에서 다리 수술을 받고 우리 병원으로 오신 환자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흥분이 가라앉자 깊은 반성이 밀려왔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100%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도 많으시고 몸도 아프신데,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네, 알겠어요" 하고 넘어갔으면 될 일이었다.


환자분이 내 설명을 알아들으실 분도 아니었다.

연세가 있으시니까,나는 따박따박 설명한다고 했지만,

그것 자체가 지혜롭지 못한 대처였다.


하나님께 회개했다.

나는 또 실족하고 넘어졌다.

어젯밤에도 말씀 읽고 기도하고 잤는대,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걸까..

왜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는 걸까.. 왜 화를냈을까?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

깊은 자책과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또 내 감정에 무너진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인간은 나를 포함해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다.

환자가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자신의 불편함을 먼저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앞으로 또 누군가가 나를 막 화나게 만들면,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까.


머리로는 “참아야 한다, 기도하자, 온유하자”를 아는데,

이성이 따라가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폭발하는 그 짧은 순간이 두렵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 짧은 찰나를 지키는게 온유와 품격인대,

마음을 지키지 못한 나의 하루가 참 부끄럽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안 된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연약한 나를 용서하시고, 지혜와 힘을 주소서.

이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오늘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다짐을 지킬수 있도록 날마다 나를 붙들어 주소서.

오늘의 부끄러움이 내 평생의 교훈이 되게 하소서.


<25.10.23>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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