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은혜

이미 받은 것을 기억하며

by 서은


희년의 은혜

“희년은 왜 지켜지기 어려웠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은 비교적 잘 지켰지만,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거의 지키지 못했다.


희년은 땅을 돌려주고, 종을 해방시키며,

소유를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해다.

듣기만 해도 아름답지만, 나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50년 동안 쌓아온 소유를

“희년이 되었으니 내려놓으라”는 말 앞에서

선뜻 순종할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면,

성령이 충만하지 않다면

희년은 그저 이상론에 불과하다.


받으려 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삶은

인간의 결심만으로 지속할 수 없다.


희년의 실천은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만 가능하다.



십자가, 우리 생애 최고의 희년

우리는 이미 희년을 경험했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해방시키고,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를 탕감해 주셨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아무 값도 받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은 값없는 희년의 은혜다.


내가 먼저 이 엄청난 탕감을 받았기에,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희년의 은혜를 나누라는 말은

억지로 착해지라는 요구가 아닌,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다.


스토리텔링으로 읽었던 레위기 말씀이 떠올랐다.

7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불안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쉬기 전 해인 여섯째 해에,

먹고도 남을 만큼

두 배의 소출을 미리 주시며 믿음을 시험하셨다.


안식년과 희년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다.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해도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을 믿고 순종할 때

기적은 시작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알 수 없을

이 평안함이 참으로 감사하다.


교회가 50주년을 맞았다.

목사님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라고 하셨다.


“네가 베풀고 수고해도

사람에게서 받으려 하지 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주라.”

마태복음 6장 말씀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께 빚 탕감을 받았기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베풀 수 있다.


내가 먼저 자유를 얻었기에

나도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내가 먼저 회복되었기에

나도 다른 사람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가능한 삶.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마음 깊이 고백한다.

희년의 은혜는

내 인생키워드가 될 것 같다.



마태복음 6장 1–4절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절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절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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