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양심이라는 영혼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

by 서은


『죄와 벌』은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가

“비범한 인간은 도덕의 경계를 넘어도 된다”는 이론을 믿고,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범죄를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려 하지만,

사건 이후 그를 기다린 것은 승리가 아니라

극심한 죄책감과 공포, 그리고 점점 깊어지는 고립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스스로 세운 논리와

무너져 가는 자신의 내면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신앙과 헌신적 사랑을 지닌 소냐의 존재는

그의 내면을 계속해서 자극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를 직면하고,

자백과 속죄의 길을 선택한다.



양심이라는 영혼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

이 소설은 범죄 자체보다

범죄 이후 인간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양심의 재판’을 보여준다.


『죄와 벌』을 읽으며 나는,

범죄 이후 한 인간이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파괴해 가는지를 지켜보았다.

그 과정을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사회의 불평등과 가난,

그리고 자신의 무력감 속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에는 ‘비범한 인간’이 존재하며,

그들은 더 큰 목적을 위해

법과 도덕의 선을 넘어설 수 있다고.


어쩌면 그는 그럴듯한 이론을 통해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견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이 너무 초라했기에,

이론만큼은 위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분명하게 말한다.

아무리 사회적 명분을 갖다 붙여도,

아무리 스스로 “정당하다”라고 외쳐도

죄는 결코 정당화되지 않는다.


특히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법보다 먼저 인간 내부에서 형벌을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양심은 영혼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죄의 진짜 무서움은

양심이 인간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데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체포되기도 전에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고,

사람을 피하며,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고통은 감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된다.

마치 영혼이 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가장 슬픈 점은 죄가 인간을 철저히 고립시킨다는 사실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점점 가족에게서도 멀어진다.

가족은 원래 사랑이 있는 곳이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가족 안에서는 최소한

사람이 숨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죄는

그 마지막 안전지대마저 무너뜨린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한다.

가까이 가면 들킬 것 같고,

설령 들키지 않더라도

자신의 더러움이 옮겨갈 것 같으며,

무엇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가로막는다.


죄는 결국 인간을 혼자 남겨 둔다.

그래서 더 무섭다.

죄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관계를 끊어내며

인간을 내부에서 서서히 썩게 만든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양심을 속인 인간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소냐를 통해 희망을 본다.

아무리 깊은 수렁에 빠진 영혼이라도

진실한 사랑과 회개가 있다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소냐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여자다.

가장 낮은 자리,

가장 비참한 삶에 놓여 있었지만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소냐의 신앙과 사랑은

말로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녀는 무너져 가는 한 인간의 곁에 서서

아무 말 없이 함께 견딘다.


그 사랑은 죄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죄를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무게를

누군가가 함께 들어주는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깨닫는다.

자신이 비범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이 죄를 끝까지 견딜 수 없었다는 사실을.


죄책감을 느끼고, 무너지고, 울며,

사랑 앞에서 무릎 꿇는 존재.

그 ‘평범함’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그 안에서 양심은 영혼처럼 마지막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그는 비로소 받아들인다.


세상이 용인하는 논리, 자기 합리화, 정당성의 말들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자기 안의 양심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양심을 지닌 인간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길은

결국 사랑이었다.

소냐의 사랑이 죄를 없애주진 않지만,

죄를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결론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죄는 어떤 이론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양심은 끝까지 인간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죄의 밑바닥에서도 인간을 다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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