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을 생각하다.
집 근처 메가박스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다.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앞으로 자주 누려야겠다.
나는 평소 역사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동안 단종의 삶을 ‘기록’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영화 속 단종의 눈물과 떨림을 마주하며,
그가 처했던 상황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비로소 들여다보게 되었다.
영화 속 단종의 대사가 생각난다.
“내가 원치 않았는대 왕이 되었고, 내가 원치 않았는대 왕에서 쫓겨났다”
정치와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 왕이 느꼈을 두려움과 외로움을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영화 평점에서 “유해진 진짜 조선사람 같다”는 글을 봤는대,
역시나 너무 잘 어울렸다. ㅎㅎ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면 삼족을 멸한다.
모두가 단종의 시신을 외면할 때,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며
행동으로 충절을 실천한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둔 후,
관직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느낀 점은
권력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가족도 없다는 비정한 사실이다.
세조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친동생인 금성대군을 죽이고,
어린 조카 단종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태종 이방원 역시 자신이 원했던 왕권중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기 위해
형제들과 이복동생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왕'이라는 자리,
그 절대 권력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무자비해질 수 있는 걸까.
가장 가까워야 할 혈육마저 적이 되어야 하는
그 냉혹한 세계가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리와 양심이라는 거.
두려움 앞에서도 '옳음'을 저버리지 않는 용기.
단종이 불쌍해서 슬픈 것도 있지만,
엄흥도의 선택이 너무 멋있어서 더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