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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석 Dec 01. 2021

들어가며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연극공연장처럼 되어있는 대학 강의실 무대 위에서 곧 있을 ppt 발표를 준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떠드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콩닥콩닥’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내가 발표할 주제는 ‘인간이 형성되는 데 있어 유전의 영향이 큰가? 환경의 영향이 큰가?’ 였다. 우리 조가 준비한 자료의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인간을 형성하는 데 있어 유전과 환경은 반반씩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해당 교양수업의 교수님이 워낙 깐깐하게 질문하는 스타일이라 어느 한 입장의 공격도 받지 않으려고 준비한 꼼수였다.

 나의 발표는 시작되었고 역시 예상대로 교수님은 중간중간 발표를 끊어가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생물학을 전공한 나에게 유리한 주제여서인지, 교수님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고 그렇게 약 30분 정도의 발표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교수님의 모든 질문에 완벽히 대답했다는 생각에, 발표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생각에, ppt를 넘겨주던 우리 조원에게 자신감에 찬 얼굴로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그런 내 등 뒤로 교수님의 질문이 하나 던져졌다.

 “현석씨는 아버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어머니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무엇이 문제였을까. 몇점 남지않은 초등학생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게 중 유독 아픈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대화를 하자며 방으로 데리고 갔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않아 고성과 물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때면 빠르게 뛰는 심장과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형 옆에 붙어서 물어봤다. “형, 아빠랑 엄마 이혼하는거야?”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우리 가족의 인생도 순탄치 않았다. 지독한 가난은 항상 우리 가족의 옆에 눌러앉아 있었고 사춘기 시절의 예민한 성격은 날카로운 가시를 만들어 주위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었다. 집에 들어서면 나의 사적인 공간이라고는 화장실밖에 없는 원룸에서 세 가족이 벌레처럼 웅크리고 살았다.

 어머니께서는 신문배달, 파출부, 청소부, 음식점 서빙 등등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고, 쌀 조차도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때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내 기억 속 어머니의 눈빛은 항상 빛이 났었다. 누군가는 그런 어머니를 독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칠흙같이 어두웠던 이 세상 속의 유일한 빛이자 올곧은 등대였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우리형과 나는 무사히 고등과정을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연극공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그 무대 위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아버지에 대한 모습은 어린 기억 필름 속 10장도 안되는 사진 같은 기억이 다인데, 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를 더 닮은 것 같냐니, 내가 뭐라고 답변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를 더 닮은 것 같다고 한다면, 절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어머니를 더 닮은 것 같다고 한다면, 난 아버지의 모습을 모르기에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참인 조건이 없기에 거짓 명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몇 초 안되는 그 짧은 순간에 정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마음 한 켠에서는 그냥 거짓말하고 무난하게 넘어가자라는 속삭임도 들려왔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버리자는 소리도 들려왔다. 약 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을까? 나는 뒤로 돌아 교수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이 날의 일은 내가 지나온 삶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난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서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이런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이 질문들에 대한 결론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되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오기까지 내가 원해서 장래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어른들이 그랬고, 좋은 대학교를 가야만 한다고 사회가 강요했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정해져 있는 큰 흐름 속에 떠밀려가듯이 살아왔고, 나름 주위 친구들에게는 좋은 대학교를 진학한 착실한 아이였지만, 그 내면은 자유의지가 없는 여리고 상처 많은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때 난 깨달았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할 때라고, 내가 사는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난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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