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공간에서 삶은 다시 시작됐다

5평 화실과 카페, 그리고 버티는 법을 배웠던 시간

by juhee의 서랍

첫아이가 태어난 지 아흔 날쯤 되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고.

그 감정은 불안이었고, 책임감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공간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백일이 조금 지난 아이와 함께 5평 남짓한 화실에서.

하지만 결혼 전 운영하던 미술학원처럼
수강생을 모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전단지에서 장사가 전혀 되지 않아
권리금이 아주 싸게 나온 카페 하나를 보게 되었다.

전세금이 없던 우리는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마련했고,
그동안 화실을 운영하며 모아둔
200만 원으로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어
카페를 시작했다.

나는 5평 화실을,
남편은 대학원 수업과 카페 운영을 함께 감당하며 살았다.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미대 후배들이 아지트처럼 카페를 찾아주었고,
임대 계약이 끝날 무렵에는 전세금 대출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날의 나는 가진 것은 없었지만
다시 시작할 힘만은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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