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화실사이에서, 다시 배우고 싶어졌던 마음
그렇게 카페와 화실을 병행하던 시간은
겉보기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남편의 모습과
가끔 집에 놀러 오던 그의 대학원 동기들을 보며
내 마음 한쪽에서도
‘나도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큰아이가 돌쯤 되었을 때,
나 역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 당시 방 두 칸에 살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방을 후배에게
1년 100만 원을 받고 빌려주었다.
나는 그 돈을 더해
대학원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둘이 동시에 학교를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우리는 곧 깨달았다.
누군가는 멈춰야 한다는 것을.
먼저 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졸업시키기 위해
나는 1년의 휴학을 선택했다.
그 선택과 함께,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결심을 했다.
지독한 짠순이로 살기로.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였다.
외식 대신 집밥을 택했고,
아이 옷은 주변에서 얻어 입혔다.
미용실 대신 아이 머리도 집에서 직접 잘라주었다.
당시 유행하던 학습지도 대신
서점에서 교재를 사
직접 아이를 가르쳤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면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비싼 텐트는 없었고,
남편이 결혼 전 쓰던
낡고 오래된 텐트 하나가 전부였다.
집에 있던 냄비와 프라이팬을 챙겨 떠나는
아주 소박한 여행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니 그래서 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