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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셉 Jan 05. 2021

영혼의 주량과 욕망의 알코올 도수

[서평01]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 열린 책들 | 2000


스 | 이윤기 옮김 | 열린 책들 | 200| 열린 책들 | 200 

은총인지 저주인지 모르지만, 몸에 알코올 분해효소가 전혀 없다. 지금도 맥주 한잔이 아니라 반잔도 겁이 나서 못한다. 알코올이 혈액에 파고들어 스미는 순간 속이 울렁이고 메스껍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어김없이 게워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술은 못하지만 술자리의 왁자지껄함과 한바탕 어울리는 풍경은 늘 욕망의 대상이니 말이다.


군 생활 때도 그렇고 직장생활 회식 때나 퇴근 후 동료들과의 잦은 모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술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피한 적은 없다. 아니, 피하고 싶지 않았다. 사이다를 마시더라도 부단히 사람들과 얽혀 앉아있었다. 업무로 부딪히고 깐깐했던 사람들도 술 한 잔과 함께 쉬이 녹아내리고 점점 망가지는 걸 보는 건 묘한 매력이 있다. 알 수 없는 정겨움과 친밀함, 그리고 외로움. 술자리에선 모두 술 냄새보다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술 못하는 내게 술과 술자리는 욕망함 그 자체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 책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개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얼큰하게 취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카페에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한 사내와 조우한다. 큰 키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조르바. 거칠고 경박하지만 뱃사람 신드바드처럼 신비한 매력을 풍기며 이야기를 한없이 풀어낼 것 같은 이 늙은 사내를 ‘나’는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난 듯 욕망하고, 그와 크레타 섬으로 떠난다.


조르바는 호탕, 호색, 호방하다. 온몸을 바쳐 순간을 살고 영원을 품는 낭만주의자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술, 여자, 먹고 마시는 것과 더불어 하루 주어진 노동 역시 잔칫집 포도주처럼 흥나게, 성례전 잔에 담긴 예수의 피처럼 신성하게 누리는 자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깡그리 무시하고 수도승을 항해 탐욕스러운 돼지 새끼들이라고 거침없이 욕지기를 내뱉지만 신이 침묵하는 고통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삶을 내어주고 피를 흘리고 연대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세상 안에 살지만 동시에 세상을 뛰어넘은 초인처럼 보이는 조르바와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나’는 욕망하지만 억제하고 종교적 언어 뒤로 계속 숨는다. ‘나’는 묻는다. 진정한 행복을 무엇이라 하는가? 사회 제도, 관습에 순응하는 삶인가? 아니면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표출하며 사는 삶인가? ‘나’는 일상의 종교 관념과 도덕적 책무에 지나치게 눌려, 축제날과 같은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얼굴을 비추는 것 같다. 조르바는 ‘나’를 풀어헤친다.


그러나,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완전한 초인을 꿈꾼 것일까? 욕망으로 똘똘 뭉쳐진 자아, 생에 대한 의지. 집착에서 온전히 해탈할 수 있는 인생이 있을까? 조르바도 결국 일상의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쌍한 과부를 내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목을 따 죽인 신부의 죽음과 구걸하던 자녀들로 인한 죄책감에서 정말 해방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의 삶도 ‘나’로 인해 흔들렸고 죽음의 순간까지 젊은 두목을 그리워했다. 조르바가 더욱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이유다.  


실존 인물 조르바를 모티브로 했다는 이 책은 실제 조르바와 허구 속 조르바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도 역시 실제 작가 카잔차키스 자신의 목소리와 소설 속의 또 다른‘나’가 묘하게 엮여 있다. 그런 조르바와 ‘나’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티격태격 하지만 도타운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정(正), 반(反), 합(合)으로 변증 한다.


읽기 자체가 술 마시기처럼 순수한 욕망 행위라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고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것이 감히 우리 영혼의 주량과 욕망의 알코올 도수를 재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완연한 소설이자 또 기행문 같은 알싸한 글맛에, 소주와 맥주를 황금 비율로 섞어 만든 폭탄주가 문단 곳곳마다 놓여있다. 목 넘김은 좋지만 일어나려 하면 주저앉게 되는 앉은뱅이 술처럼 강렬하다. 술 못하는 내가 도수 높은 ‘조르바’를 조심스레, 진하게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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