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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셉 Jan 20. 2021

글이 있는 삶의 자리

[서평 05] 한국의 글쟁이들

한국의 글쟁이들 |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


‘글쓰기는 어렵다’는 ‘삶은 고해(苦海)다’라는 명제만큼이나 참되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 곳곳에도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이 널렸다. 글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글쓰기는 버겁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힘들고 버거우면 안 쓰면 그만 일 텐데, 포기하기엔 쓰고 싶은 욕망이 쉬 사그라지지 않는다. 동네 도서관 빼곡한 책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일생 살면서 나도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난다. 정작 내가 쓰고 싶고, 또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무언가 쓰고자 하는 욕망과 '어떻게 좋은 글을 쓰는가' 하는 물음 사이에 짓눌려버리기 다반사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전에 비해 글쓰기 책이나 강좌는 늘어났지만, 정작 내가 쓰고 싶은 특정분야의 글쓰기는 무엇이고 그런 전문 글쟁이로 훈련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답을 얻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책은 누가 쓰고 글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 시대 글쟁이들의 집필 세계


한국에 '땅콩집' 열풍을 불어오게 했던 건축 전문 기자 故 구본준은 ‘한국의 글쟁이들’에서 각 분야 - 인문, 역사, 문화, 사회, 예술, 과학 - 를 대표하는 한국의 글쟁이들을 소개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김용옥, 이원복, 공병호, 이주헌, 정민부터 다소 낯설지만 개성 있는 저술가 주강현, 임석재, 이인식 등 총 열여덟 명의 흥미로운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구본준은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이 평소 본인이 관심 있는 작가를 만난다면 무얼 묻고 듣고 싶을지 본능적으로 탐지한다. 그 질문들을 본인이 대신 찾아가 인터뷰하고 일목요연하게 풀어 이 책에서 전달했다. 글쟁이들만의 소신과 원칙, 추구하는 글쓰기 방향은 어떠한지, 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지, 어떻게 글감을 찾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지, 작은 습관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대표 작가들의 ‘집필 세계’를 밀착 취재해 알기 쉽게 전달해준다. 특히, 내놓으라 하는 글쟁이들이 어떻게, 무슨 계기로 글을 쓰게 됐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구본준은 기자다. 당연히 그의 글은 기자스럽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글쓰기는 출판 담당 기자로서의 경험과 역량을 탄탄히 드러낸다. 전개가 빠른 취재 글의 힘이 십분 발휘되어 인터뷰 내용이 현장감 있게 전해진다. 정민 교수가 말한 쨉 펀치처럼 호흡이 간결한 글이 명쾌하고 명료하게 날아들어 미사여구 없이 휘청거리게 만든다. 글의 리듬과 호흡이 그만큼 좋다는 말이다.


“‘~이다’ 체는 잽이에요. 툭툭 던지는 잽. ‘~있다’ 체는 어퍼컷이나 훅이 되죠. ‘~것이다’ 체는 스트레이트예요.” 그래서 정 교수는 “잽이 되는 ‘~이다’ 체가 기본”이라고 말한다. 반면 ‘것이다’는 결정타가 된다고 본다. 때문에 이 ‘것이다’를 자주 쓰면 짜증 나는 글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있다’ 체는 글이 늘어져 긴장감이 없어지는 약점이 있다. 결국 ‘~이다’ 체를 기본으로 하고, 가끔 힘을 줄 때 ‘~있다’ 체와 ‘~것이다’ 체를 적절히 써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가 권하는 요령이다.   p23


구본준은 이 책에서 단순히 글 잘 쓰는 글쟁이들을 뽑아 나열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글쟁이들 중에서, 분야별 집필을 이끈 선구자격 저술가들을 선별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특정분야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엄밀히 말하면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글쟁이 이전에, 새로운 삶의 방식(Life Style)을 열어젖힌 지식 탐험가에 가깝다. 이 글쟁이들은 '글'나무 아래서 '글'이 떨어지길 기다리지 않는다.  글이 자랄 수 있는 땅을 직접 찾아가 갈아엎고, 글감을 심고, 가꾸고 글을 수확하는 수고를 몸소 감당하는 이들이다.


글은 읽혀야 한다


둘째, 탁월한 글쟁이들이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애면글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톺아보는 것이다. 이 책이 단연 빛나는 이유다. 구본준은 분야별 소양을 갖춘 탁월한 작가 중에서도 ‘독자들이 내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글쟁이들을 선별했다. 독자와의 소통 측면만 놓고 보면, 불편하지만 구본준이 언급하는 책 판매부수는 쉬이 간과할 수 없는 수치다. 저술가의 생계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글을 소비하고 받아들이는 독자들과 글을 쓰는 이들이 어떤 접점을 만들어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앞으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누가 내 글을 읽을 것인가' 브런치 플랫폼에서 구독자 수나 글 조회수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도올 같은 글쟁이도 자신이 그저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지 않는다.


도올의 글은 어려운 용어나 외국어를 많이 쓰는데도 소화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그가 저술가로서 오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도울 특유의 행동 때문에 그가 무척이나 자유분방하고 변덕스러울 것 같지만, 글에 있어서는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자기 글을 읽을 대상을 분명하게 정하고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어떻게 하면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는가. 그게 내 삶에서 끊임없이 벌여야만 하는 사투라고 할 수 있어요." p69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알고자 하는 영역의 배움을 사랑하는 이다. 그리고 좋아서 글을 쓴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본디 글을 쓰는 이들은 자신의 글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층을 분명히 알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 소개된 글쟁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쓰고자 하는 글이 확실했지만,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철저히 자아 중심적인 글쓰기를 내려놓았다. 학자나 전문가로서 생계수단을 위해 소신을 저버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에 소개된 글쟁이들이 자신의 글을 써왔다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적 우월감과 교만을 탈피해서 자신의 생각과 삶을 독자들과 나누려는 열린 마음이 좋은 글쟁이가 되게 했다. 글은 읽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


나름 상업적으로 성공한 글쟁이들에만 집중되어있어 부재가 ‘성공하는 글쟁이들의 8가지 습관같은 자기 계발서 느낌이 진하게 나는  사실이다. , 여기 소개된 글쟁이들의  소개만 있고 글맛을 짧게나마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아무래도 아쉽다. 아마 이건  내용보다도 편집자 또는 출판업계의 현실적인 아쉬움이라   있겠다. 그럼에도  책은 반갑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글을 쓰는 저술가들을 소개하고 막연하게 글쟁이로 성장하길 원하는 독자들에게 저술가의 삶이 어떠한지 ‘현실감각 배양하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작가를 소개하는  장별 마지막에 입시 참고서 핵심정리처럼 모아준 글쓰기에 관한 실용적 조언은  책의 백미로 따로모아 읽어도 유익하다. 무엇보다,  책이 고마운 것은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 구본준 기자의 지론을 증명하듯  넘어 우리 시대 글쟁이들 삶의 모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은 삶의 자리와 반드시 맞물린다는 것을 일관되게  있게 서술한다. 글이 있고 삶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있기에 글은 피어 난다.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반드시 '글이 있는 삶의 자리' 가야 하는 이유다.



덧니,

저자 故구본준 (1969-2014) 한겨레 신문 기자는 해외 출장 중이던 지난 2014년 11월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이 죽기 전 세바시에서 '글을 진짜 잘 써야 하는 사람, 바로 직장인!' 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세바시 측은 그를 기억하며 유튜브 채널에 이렇게 그의 강연을 소개했다.


구본준 기자. 미술과 건축에 해박한 그에게 세바시 강연을 의뢰했을 때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노라는 말은 의외였습니다. 그것도 직딩들의 글쓰기라니요. 하지만 강연을 듣고 나면 무릎을 칠 수 밖에요.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여러분에게 반드시 필요한 강의. 지금 들어보세요


한번 들어보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TwiafdbBbTU

(세바시 339회 글을 진짜 잘 써야 하는 사람, 바로 직장인! | 故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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