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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다녔는데 왜 거기 살아?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by 알아차림

내 인생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 취업. 지방대를 나와서 난 시중은행 정직원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난의 맘고생 다이어트로 인한 일시적 외모 업그레이드때문인지 , 지방대 특별전형덕분인지 아니면 온우주의 기운이 나에게로 온 덕분인지 알수 없지만 난 그렇게 은행에 취업했다. 잘 다니다가 호기심많고 열정 만수르인 남편을 만나 은행을 관두고 동남아로 갔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은행을 관두고 신랑과 나는 애둘을 데리고 말레이시아로 갔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원동력은 바로 말레이시아행이 실패로 돌아간 후, 2~3년동안 겪은 생활고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4인가족이 집도 절도 없이 그냥 무작정 한국으로 들어와서 다시 시작했다.

2021년 겨울, 한국 집값은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2억에 60만원짜리 다 쓰러져 가는 교통좋은 곳의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갔다. 2억은 부모님 이하 친인척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돈을 마련했다. 정말 나로써는 극한의 타이밍에 맞춰 한국으로 들어와 남편과 새끼 둘을 이끌고 살림을 꾸렸다. 내가 돈을 벌러 나갈수는 없는 상황이였기에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하였다. 돈 아껴쓰기, 아이들 한국생활에 잘 적응시키기 등등...


다른 유닛보다 월등히 싼 월세답게 리모델링이 하나도 되지 않은 방 두칸짜리 집은 비가 오면 베란다에서 비가 새고 집안의 작동되지 않는 라지에이터에서도 물이 떨어졌다. 입주한지 얼마되지 않아 화장실에서는 곰팡이가 벽화를 그리고 겨울이면 방 모퉁이에서 습기가 올라왔다. 처음엔 지옥과도 같았으나 짐승같은 적응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곳으로 탈출하기 위해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서울살이를 해 나갔다.

남편과 아이들은 다행히 잘 적응했다. 그런데 내가 문제였다.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자고 했을때 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들이 내 맘에 생채기를 냈다. " 집은 사놓고 갔었어? " " 지금 남편은 그럼 어디로 다시 취직 한거야? " " 애들은 한국말 잘해??" " 지금 집은 그럼 전세야? " " 왜 그 아파트로 갔어??" 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들이 나를 더욱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코비드 때문에 한국에 급하게 오느라 지금 이렇다 라는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려는 내 자신이 너무 구차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친한 친구사이에 충분히 물어볼수 있는 질문이였다

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니 그들의 말이 너무 고깝게 들리고 잔인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들의 궁금증에 내가 친절히 답해주기엔 여유가 없었다.

친구를 만나고 올때마다 내 맘이 널뛰고 미치고 돌아버릴것만 같아서 요가를 시작했다.

1여년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1여년을 거의 매일 요가하면서 다짐한게 하나 있다.

"남에게 친절하라, 아무말이나 뱉지마라, 그 사람은 전쟁과도 같은 힘듦을 겪고 있을수 있다. 불과 3년전의 나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썼지만 분명 나도 모르게 다른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한다. 지금 나의 언행이 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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