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효과,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 것
배구 교습을 받은 지 어언 2년 차. 최근에는 많이 줄었지만, 한결같이 받는 지적이 있었다. 어깨에 힘을 빼라는 것. 리시브할 때나 토스를 할 때 공격을 할 때도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어깨에 힘을 주게 되면 동작이 경직되어 정작 힘을 주어야 할 부위에 제대로 힘을 주기가 힘들어진다. 리시브를 받을 때도 동작이 부자연스러워 공을 치게 되며, 공격할 때도 스윙이 느려지게 되고 힘 전달이 잘 안 된다. 우리 팀에서 내가 맡은 포지션은 세터다. 토스할 때 어깨에 힘을 주게 되면 공을 잡기가 힘들어지고 결국에 힘이 잘 안 실려 원하는 곳까지 공을 보내주기 힘들어진다.
배구 때문에 괜히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레 어깨를 의식하게 되었다. 잠을 자면서도 어깨에 힘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걸음걸이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지는 않는지…. 의식하게 될 때면 어깨에 힘을 빼고 팔을 늘어뜨리려 애쓰게 된다. 왜 이리 모든 순간에 어깨에 힘을 주고 사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힘주어서 하려는 습관이 이런 잘못된 버릇을 가져왔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찌 이리 쉽게 어깨에 힘을 빼고 사는지 궁금했다.
우리 팀에서는 나를 포함해서 세터가 총 2명이 있다. 지금 주전을 맡고 있는 40대 중반의 세터 형은 세터가 하기 싫었지만 마땅히 맡을 사람이 없어서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제든 내 실력이 올라오면 양보할 계획이었다. 그런 형의 마음을 알아 빠르게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가능하면 매일 체육관에 오려고 하고, 조금 일찍 와서 토스 감각 기르는 연습을 했다. 배구에만 매진하다 보니 다른 무언가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웠다. 배구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빨래할 시간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자연스레 주변 지인과의 만남은 조금씩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럼에도 실력이 빨리 올라오지 않아 조급해졌었다. 그래서 자꾸만 예민해졌다. 대회에서나 연습에서 같은 팀 탓을 유난히 더 하게 되는 모습이 나올 때가 잦았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라 경기가 끝나면 자책감이 많이 들곤 했다. 그렇게 우울해질 때면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는 늘 나에게 소원을 빌었다. “우리 OO이 대학교 가는 거 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네.”, “우리 OO이 졸업하고 취업하는 거 보면 소원이 없겠네.” 소원을 이루고 나면 다음 소원이 갱신되었다. 요즘 소원은 결혼이었다. “OO아. 좋은 여자친구 생기면 데리고 와. 만나면 할머니가 엄청 예뻐해 줄 텐데.” 명절에나 겨우 보던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새하얘진 걸 깨닫고 마음이 급해졌었다.
올해는 들어오는 소개를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았다. 소개팅을 20번째 받았을 때쯤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20개팅’이었는데 어느새 ‘50개팅’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개팅을 50번이나 했다는 건 최소 49번의 소개팅이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생각보다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게 쉽지 않았다. 상대방이 좋아하면 내가 끌리지 않았고, 내가 끌리면 상대방이 흥미를 잃었다. 어쩌다 서로 호감이 생겨도 서로의 흠만 자꾸 보여 자연스레 정리되었다. 그렇게 소개팅만 받다 보니 벌써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했다. 내내 덥다 잠깐 가을이 오는 줄 알았는데 겨울이 와버린 계절의 탓도 있을 것이라 여겼다. 매달 매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치열하게 목표한 바를 위해 살았던 것 같았는데 결과가 쉬이 드러나지 않아 허무하고 조급함이 커졌었다.
소개팅 중에 결혼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소개팅 상대에게 마음이 급해진 것 같다는 사실을 고백했었다.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는 상대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사실 이런 마음으로 누굴 만나면 안 되는 거겠죠?” “그럼요. 그런 마음으로 연애를 하면 위험해요.” 단호하지만 명쾌한 대답이었다. 조금은 버거웠지만 머리는 가벼워진 시간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니 친구가 집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다. 집 근처에서 약속을 마치고 잠시 우리 집에 들린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항상 제일 친한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친구였다. 요새 배구니, 소개팅이니, 관계 외의 것들에 몰입해 친구에게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었다. 잘못한 게 없었는데 미안하다는 이야기가 입버릇처럼 나왔다. 빨래를 개고 집을 나오며 친구가 이야기했다.
“오해하지마. 사실 난 솔직히 너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래도 우린 친구니까 옆에 있는 거야”
사실 우린 서로 생각하는 것도 행동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다만 서로의 결핍과 외로움을 가장 깊이 알고 있는 사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서운하진 않았다. 그저 요새 다른 것들에 집중하며 친구의 외로움은 신경 쓰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다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어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마이크 에크하르트’라는 독일 수도자의 말을 인용한 거였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모든 사람을 그대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할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한, 그대는 정녕 그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에게 답이 왔다. "그게 참 쉽지가 않네.". 그리고 ‘조망 효과’에 대해 다룬 잡지의 글을 보내주었다. 조망 효과란 우주인들이 겪는 현상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겪는 인식의 전환이나 감정적 충격을 이야기한다. 우주에 다녀온 비행사들은 하나같이 지구를 바라보며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한없이 넓게만 느껴졌던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에서는 한없이 작디작아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지구에서 벌어지는 국경, 갈등, 개인적 문제들이 얼마나 사소한지 깨닫게 된다고 한다.
“저렇게 작고 아름다운 곳에서 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나 미워했을까?”
우주에 다녀온 한 비행사의 발언이다. 이렇게 넓은 우주에서 어쩌면 먼지보다도 작게 느껴질 존재였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면 저 멀리 다른 은하까지 내 목소리가 전해질까? 당장 옆 동네에 사는 사람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데 내 존재를 알리려 너무 아등바등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애꿎은 데 허비하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사랑을 내 존재를 의식해주는 주변 사람에게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짐 이후 크게 두 가지가 달라졌다. 먼저 들어오는 소개팅을 거절하게 되었다. 나와 주변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전혀 모르는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할머니 미안해요. 연애는 조금 더 뒤로 미뤄야겠어요.) 그리고 배구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저 주변 사람과 즐거운 추억을 쌓는 데에 만족하며 배구에 임했다. 웃기게도 배구는 욕심을 버린 뒤로 더 잘 된다.
어쩌면 작년과 다를 바 없이 지나간 한해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결 편안한 연말이다. 이제서야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