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이 별건가?

얼마남지 않은 동네 생활

by 다재

평소 집, 직장, 체육관, 집 정해진 장소만 다녀도 하루를 가득 채웠다. 이 동네에서 살게 된 지 어느덧 1년하고 절반의 시간이 지났다. 가끔 집 주변에 맛집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설명할 지식이 없어 민망해질 때도 있었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나 반창고를 찾을 때도 방을 한참 뒤지며 찾을 정도인데…. 동네라는 넓은 세계를 꿰뚫기란 아주 버거운 일이었다.


양산 선물이 흔해질 만큼 여름의 존재감이 해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지었다. 여름 더위가 무르익을 때면 긴 휴가를 받는다. 이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몰라 술자리나 만남으로 공백을 메우려 애쓰며 지냈다. 휴가의 절반이 지나갈 즈음, 눈 뜨면 해가 중천이고 정신 차리면 간의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던 나날에 지쳐있었다. 세수하려 겨우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보면 유난히 퀭하고 눈그늘이 진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어휴 왜 이렇게 살까?’ 잠깐의 푸념 이후 어김없이 정직하게 배가 고파왔다.


무언가를 해 먹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손 하나 까딱할 체력이 없었다. 문득 집밥이 그리워졌다. 그중에서도 고등어구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바싹하게 익은 고등어구이 껍질을 젓가락으로 푹 찔러 흰 살과 갈색 살이 적절히 배합되게 살을 발라내어 쌀밥 위에 얹어 먹는 상상을 했다. 자꾸 입에 침이 고였다. 바로 핸드폰을 켜 주변의 생선구이 집을 찾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꽤 괜찮은 평의 생선구이 집이 있었다. 부끄러움은 뒤로 하고 헝클어진 머리와 퀴퀴한 얼굴 그대로 아무 옷이나 집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막상 식당 앞에 도착하니 애꿎은 문손잡이만 손으로 쓰다듬을 뿐이었다. 쉽게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혼밥을 그렇게 자주 해보지도 않았고 할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 혼영, 혼여, 혼술, 혼밥! 언젠가 해보겠다며 노래를 부르면서도 막상 실천할 의지도 여건도 없었다. 그런 자각을 식당 앞에서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다 도저히 집에서 무언가를 해먹을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식당 문을 열고 사장님께 외쳤다.

“ 고등어 구이 1인분요. ”


조금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사장님께서 밑반찬 몇 가지와 된장찌개를 우선 내어주고 곧이어 고등어구이를 갖다주었다. 처음 살을 발라서 밥 위에 얹어 먹을 때 그 맛은 상상하던 그 맛이었다. 이게 행복인가…. 행복 별거 없다는 생각이 뇌에 가득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배운 방식으로 큰 뼈를 빼내어 살을 발라 먹고 뼈 주변에 붙은 고소한 살까지 전부 발라 먹었다. 오랜만에 만족하는 정말 든든한 한 끼였다. 그동안 나는 살기 위해 먹는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문득 그 식당의 다른 메뉴들도 궁금해졌다. 가자미구이, 김치찌개, 두루치기…. 언젠가 다 맛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먹어 치운 식사 거리를 찍어 가장 자주 찾아오는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다른 메뉴도 도전해보고 싶지만 혼자서는 어려우니 다음에 꼭 같이 가자는 의미였다. 아쉽게도 친구와 식당에 찾아갈 때면 문을 닫아 결국 혼자서 전 메뉴를 다 탐미하게 되었다. 시간이 될 때면 한 번씩 들리다 보니 벌써 혼자서만 4번이나 방문하게 되었다. 마지막 식사로 가자미구이까지 해치우고 나서야 내 목표를 이룬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기분이 들었을까? 관성처럼 주변의 새로운 곳이나 스쳐 가던 곳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으려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집 앞 골목길에 새로 생긴 수제버거집. 조금만 더 가면 더 저렴한 맥도날드가 있어 매번 지나쳤는데 최근에 들려 호기심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은 안 가도 될 듯하다. 매번 출근하다 보니 보기 힘들었던 낮에 보는 주변 상가의 풍경은 또 달랐다. 밤에는 한산했던 카페가 낮에는 사람으로 북적이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얼마 뒤 친구들과 그 카페에서 모임을 하다 가방을 두고 나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지금 집은 전세로 들어와 내년 3월이면 계약이 끝난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집을 알아보던 차였다. 이 동네에서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그 전에 정을 둘만 한 공간을 하나 더 찾은 것 같아 만족감이 드는 건지 아쉬움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매번 이런 식이다. 시간이 넉넉할 때는 주변의 것들에 시선을 여유롭게 두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서야 그 의미들을 하나씩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남은 6개월에서의 이곳의 생활이 몹시 아까워지고 소중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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