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내돈내산 콘서트
“앙코르를 새벽 5시까지 안 끝내줘서, 관객들이 제발 끝내달라고 울부짖었다”, “9시 시작 콘서트였는데 막차가 끊겼다는 소식을 전하며 첫차가 올 때까지 관객들 노래자랑 시키며 9시간 동안 논스톱 공연을 했었다.” 가수보다 관객이 먼저 지칠 정도로 무대 에너지도 넘치고 앙코르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가수 싸이의 일화이다.
2달 전 친구가 ‘싸이의 흠뻑 쇼’를 같이 가자고 졸랐다. 무언의 실물을 관람하거나 어떤 퍼포먼스의 직관 같은 데에는 관심이 많지 않아 평소라면 단호하게 거절했겠지만, 이번 여름은 연수와 출장 선물 세트로 인해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지 않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응하게 되었다.
‘3시간 공연에 154,000원?. 1시간당 5만원꼴?’
예상보다 높았던 티켓 가격에 ‘헉!’했지만 고민을 하기에는 해당 콘서트의 전 순회공연은 항상 매진이었고 지금 예약하려는 날짜도 매진 직전이었기에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은 쉽게 주문하지만, 넷플릭스 구독 요금에는 집안 기둥을 뽑는다고 아우성치는 역설적인 상황과 대입해보며 어쩌면 내가 이런 분야에 ‘내돈내산’해보지 않은 가격 감수성 없는 사람일 수 있을 거란 결론을 내리고 ‘앙코르도 많이 해준다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싼 편이지.’라는 자기합리화 끝에 결제를 할 수 있었다.
티켓을 받기 전까지는 심드렁했었는데 막상 받고 보니 꽤 설렜었나 보다. 콘서트 당일 전까지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흠뻑 쇼’에 간다고 떠들고 다녔었다. 어느 때보다 고민한 끝에 결제한 파란색 티를 입고 거울 앞에 서니 꼭 엄마가 사준 옷을 입은 것 같아 꽤 웃기기도 했고, 나름 복기한다는 의미에서 싸이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보면 모르는 노래가 너무 많아 ‘싸이는 음원 발매랑 연재를 헷갈린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싸이의 창작량에 감탄하기도 했다. 콘서트를 기다리는 한 달을 이를 위한 준비와 생각으로 보냈었고 그 시간이 꽤 즐거웠었다.
공연 당일 콘서트장 근처에 다다르면서 보이는 수많은 파란 인파들을 보며 새삼 ‘내가 싸이를 보러 왔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왼쪽을 봐도 파란색, 오른쪽을 봐도 파란색. 온통 파란색, 모두 파란색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란색은 위장 색이 되어 한눈을 팔면 친구를 잃어버리기에 십상이었다. 그 파란 물결에 섞여 한 사람을 기다리는 꽤 길고 지루한 시간 끝에 등장을 알리는 듯한 음악이 들리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곧 등장한 싸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지고 말았다.
계속 방방 뛰며 그의 자취를 눈으로 좇다가 그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주는 순간에는 나를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소리 지르기 바빴었다. 흡사 광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싸이도 그런 광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사전 안내 설명에서 ‘관객’을 ‘광객’으로 ‘관람’을 ‘광람’으로, ‘관’이라는 글자를 ‘광’으로 틀려 말하였다. 처음엔 실수였나 했지만, 의도된 오타였다. 그게 싸이의 공연 취지를 대변하였다. 실제로 싸이는 공연 중 관객들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꽤 새침하게 반응하였다. 만족할 때까지 소리를 질러주어야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공연을 진행하곤 했다.
그런데도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게 무대가 정말 알찼고 완벽에 가까웠다. 조명, 디스플레이 구성, 보조춤꾼 대형, 의상, 카메라의 전환 타이밍. 사람들 눈에 쉽게 닿지 않는 곳마저도 하나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대표곡 ‘챔피언’이나 ‘강남스타일’에 빗대어 보는 조금은 유머러스하고 시끌벅적해 보이는 그의 이미지에 속아 몰랐던 완벽주의자인 싸이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그의 소속사에 속한 가수들은 그의 꼼꼼함에 혀를 내두르다 결국 지쳐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어쨌든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준비한 무대에서 관객이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만큼 서운한 일이 있을까? 이 질문이 그의 관객의 반응에 대한 예민함의 모든 걸 설명하지 않겠지만 그걸 벗어나 그의 무대에 대한 진심과 이런 관객을 향한 정성 어림이 무의식적인 울림과 에너지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우리를 ‘광객’으로 돌변하게 했다.
준비된 공연을 다 마치고 앙코르 공연을 할 때쯤 친구와 나는 도저히 체력이 되지 않아 먼저 공연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근처 대학 건물 화장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쯤 오십 가까이 되어 보이는 경비원 아저씨께서 말을 걸었다.
“흠뻑 쇼 다녀오시는 길인가 봐요. 나도 싸이 팬인데 공연은 어땠나요?”
평범한 질문이지만 호기심으로 빛나는 그 눈빛에 기분이 좀 오묘했던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싸이의 콘서트는 20대 혹은 30대가 주류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까?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콘서트 중 ‘아버지’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가 떠올랐다. 노래 제목과 어울리게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노래였는데 그 노래를 들으며 우는 관객들이 몇몇 카메라에 잡혔었다. 그중에는 10대도 있었고 20대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50대 혹은 60대 되어 보이시는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께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었다. 노래가 뛰어난 편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편도 아니지만, 열정과 노력 그리고 무대에 대한 진심은 세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통하는 건가 싶었다.
평소 효율성을 중요시하여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되고, 가수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면 되지 않나 생각해 왔었는데 이번 콘서트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당일의 콘서트를 위해 한참 전부터 준비하고 연습했을 시간들, 더 풍성한 볼거리를 위해 머리 아프게 했던 고민들을 포함하여 하루 그 3시간을 위해 수십배 혹은 수백배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본인을 위해 찾아와줄 사람들의 노고와 시간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 책임감이 수십 년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가수 싸이 이외에도 본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중에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5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국민 MC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재석, 영화 <곡성>의 감독 나홍진이 그렇다. 주변 동료가 피곤하다고 본인을 멀리할지라도, 촬영 스태프와 마찰이 생길지라도 완벽해질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과정의 끝에 완성된 창작물에 대해 좋고 싫음의 평을 넘어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감과 진심이 그들을 또 기대하고 찾게 만드는 것 같다. 어쩌면 진심은 형태와 가치관에 구속받지 않으며 사람의 나이, 문화에 여과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는 순수의 형태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본인에게 가혹할지라도 정성에 정성을 담아낸 진심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끝으로 아직 흠뻑쇼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싸이는 올해로 45세라고 한다. 무릎이 아프거나 체력이 힘들어 그만두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나이다.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혹여나 뒤늦게 경험의 부재에 대한 후회를 가지고 싶지 않다면 ‘흠뻑 쇼’를 한 번 다녀오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