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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윤 Aug 03. 2023

캠퍼스를 거닐다 든 생각들

나이를 먹을수록 재미없어지는 인생에 관하여

 처음 대학교에 들어왔을 때 기분은 꽤 냉소적이고 거만했다. 

‘ 이곳은 샌님이나 오는 곳이겠지. 무슨 재미로 어울리겠어. 잡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고 무사히 졸업하자.’라는 생각으로 들어와 3월의 다양한 학과 행사와 술자리를 거치며 같은 과 친구와 눈 마주침이 많아졌고 어느 순간 손을 잡고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그렇게 과에서 제일 먼저 CC를 해버리고 말았다.(금방 헤어졌지만) 한차례 흑역사를 생성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었다. 학교에서 여신이라고 소문난 동급생이 있었다. 그 친구가 댄스 동아리에 들어왔다며 너도 가입하지 않겠냐는 과 선배의 꼬드김에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도 민망한 오디션을 거쳐 동아리에 입성하게 되었다. 눈물이 나게도 그 친구는 일주일 전에 탈퇴했었고 그 소식에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쳤음에도 이런 이유로 탈퇴한다고 말하기엔 도저히 창피해서 피눈물 흘리는 연습을 거쳐 동아리 행사 공연 1-2번은 하고 탈퇴하게 되었다.     

 위처럼 지금 생각해도 나의 대학 생활은 비정상적이고 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지금에 와서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끼리도 마치 누가 더 바보스러운지 증명하는 데에 혈안이었던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많이 연출하며 지냈었다. 선선한 밤이면 캠퍼스 벤치에 모여 맥주 한잔 기울이며 그런 순간들을 공유하며 서로 웃고 떠들던 날이 많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애 및 결혼, 사회생활, 건강, 취업 및 주거 마련 등 서로 다른 다양한 과제와 걱정거리들로 조금씩 세상을 조금 더 진지하고 계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혹여나 약점이 잡힐까 봐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그 사람의 차나 혹은 입고 있는 명품을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마음속의 우열을 나누게 되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며 늘어나는 주름처럼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사회에 들어선 한 성인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조금 더 실수가 줄어들었고 처신하는 법이 늘었으며 할 수 있는 게 많아졌고 지혜로워졌다. 그렇지만 그만큼 세상은 좀 더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졸업 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지내고 있지만,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4명의 대학 친구들이 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모여 같이 여행을 갔었고 올해 여름엔 다 같이 계곡에 다녀왔었다. 막상 계곡에 들어가니 전날 비가 와 물살이 강해져 그냥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펜션에 구명조끼를 빌리러 갔지만 구명조끼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빌려 남아있지 않았고 겨우 튜브 1개를 빌릴 수 있었다. 고작 이걸로 어떻게 이 강한 물살을 견딜지 고민하던 중 친구 1명이 재밌는 제안을 했다. 물살을 이용해 상류에서 1명이 튜브를 타고 내려오면 다른 친구들이 하류 지점에서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친구를 잡아주자는 것이었다.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게 낫다는 생각에 먼저 이야기를 꺼낸 친구의 시범을 시작으로 반신반의하던 친구들도 결국 튜브 타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로 잡아줘야 겨우 버틸 정도로 물살이 세서 자주 넘어지고 튜브가 뒤집히기도 하며 누군가의 슬리퍼가 떠내려가기도 했지만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넘길 때마다 오히려 서로 웃음이 터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연수원에서 우연히 만난 동기를 차로 집에 데려다주며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동기는 폭소를 터뜨리다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설레했다. 어쩌면 그 말 뒤에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스물 새내기 시절, 벚꽃이 만개하던 봄에 교수님께서 그저 강의실에 앉아있기엔 아까운 날씨라며 수강생들을 이끌고 봄나들이를 나간 적이 있다. 온천천에 돗자리를 깔고 나란히 앉아 수강생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웃고 떠들며 이런게 낭만이구나 생각했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순수하게 보낼 수 있을 그 시절의 추억을 선물해주려 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엔 이 행복의 무게가 추상적이었지만 요즈음은 조금씩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사계절마다 한 번씩 꼭 모교에 들려 학생 시절 자주 들렸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캠퍼스를 걸으며 장소 곳곳에 배어있던 추억을 희미하게 회상하곤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해야할 것과 지켜야할 건 늘어만 가기에 예전과 같이 살아가기엔 무리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로의 실수와 엉뚱한 모습에 엄격한 잣대보다 웃음으로 답하는 날들이 있기를 바란다. 

졸업을 하고 드디어 드디어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설렘반 두려움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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