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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재 Oct 27. 2023

꿈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의 방향은 행복으로 향하기만 하면 되지.

“저는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달 전 아동복지센터에서 강연을 진행했었다. 강연을 마치고 Q&A 시간에 받은 질문이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 방황하는 청춘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이에 걸맞은 멋들어진 대답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중에서 아무거나 골라 대답해도 그럴듯한 마무리가 될 터였는데 그런 대답을 하기가 망설여졌었다.          



 올해 나이로 스물아홉이 되었다. 마지막 이십 대라는 생각과 내년에 서른이 되면 왠지 더 성숙해져야 할 것 같다는 마감효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 해에는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도전해보기로 다짐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봉사였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아동복지센터에 들러 청소도 하고 행사도 돕고 가끔은 학생들과 놀아주기도 했었다. 그곳에서의 인연이 두어 달쯤 되었을 때, 복지센터 과장님께서 따로 부르셔서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아이들을 위해 강연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유난히 부담스러워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이번엔 고민 끝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것도 어른이 되는 방법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당시의 알 수 없는 패기가 가라앉고, 자연스레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귀찮은 건 둘째치고, 막상 강연을 준비하려니 막막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본인도 부족한 점 많고 앞으로 배울 게 많은 사람인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지 어려웠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는데, 그냥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창하게도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대단한 직업은 아니나 그래도 현재 하는 일은 내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 과정이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던 만큼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마음속 깊이 있었다. 이 이야기만큼은 당당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연 당일, 열 명 남짓한 아이들 앞인데도 불구하고 꽤 긴장했었다. 그 떨리는 마음을 겨우 잠재우고 강연을 이어나갔는데, 그 내용은 꿈에 한계를 두지 않고 이루고자 한다면 치열하게 살라는 말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 경험을 좀 각색하고 살을 보태서 극적으로 바꾸어 보았다. 그 덕인지 중간에 눈물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던 걸 보면 학생들에게 나쁘지 않게 들렸던 모양이다. 

 강연을 마치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형식적인 질문과 교과서적인 답을 내며 훈훈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찰나에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본인은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대답은 머릿속에 많았다. 그런데도 망설여지는 건 왠지 정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고민을 하다 더 이상 침묵하면 안 될 것 같은 타이밍에 애써 숨을 고르고 답을 건넸다. “언젠가 꿈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살아가시길….” 이 대답도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 입사한 뒤로 1년, 2년 경력을 쌓아가며 어느새 5년 차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첫 직장에 들어왔을 때의 설렘과 긴장은 잊힌 지 오래다. 해를 거듭할수록 일을 적게 하는 요령과 소소하게 횡령하는 방법(커피스틱 챙겨가기, 간식 많이 먹기 등)만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일은 직장보다 직장 밖에서 찾게 되었다. 직업 만족도를 굳이 따지면 좋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쩌면 직업을 택해서 하는 사람보다 살다 보니 그 직업을 갖게 된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데이트도 할 수 있고, 시간이 남으면 좋아하는 걸 찾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런 걸 깨달을 때마다 직업 자체가 행복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았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꿈을 자유롭게 꾸라고 열변하면서도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이중적이게도 ‘꿈은 없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그 강연은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 발언을 번복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연을 마무리 지을 때쯤 그 학생에게 그 질문에 다시 대답하겠다고 했다. 기왕이면 꿈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전했다. 대신 너무 유흥에 치우쳐지지 말라는 잔소리도 덧붙였다. 그 때 그 목소리와 내용이 그 학생의 귀에 어떻게 담겼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거나 혹은 벌써 기억의 저편에 묻혀 잊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임감 없는 발언일 수 있으나 그래도 후회 없는 대답이었다.

 얼마 전에 나무에 관한 글을 읽었다. 모든 나무가 꼭 위로 자라는 건 아니라고 한다. 옆으로 자라는 나무도 있었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라지만 환경이 충분하면 가지가 5m까지도 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태풍처럼 강한 바람이 불 때면 꺾이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사람도 나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일을 쟁취하거나 인생의 성공을 향해 위로 뻗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위보다는 옆으로 뻗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옆이란 가족, 친구, 종교, 취미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할 수 있는 말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든 환경에 적응한다면 그 나무는 쑥쑥 자랄 것이다. 본인에게 의미가 있다면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뻗어나가 행복에 가까워지면 그만 아닐까 싶다.

사람과 나무는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나무의 꿈은 뭘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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