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실수하고 배우는 것들.
좀처럼 둔하고 덜렁거리는 성격이라 살아가며 실수를 참 많이도 저질러왔다. 가볍게 넘어갈 실수부터 결정적인 실수까지 비의도적일 때도 있었으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일을 만들었다. 그런 순간을 겪고 나면 당장 혹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수치심과 자괴감이 밀려왔었다. 날씨가 춥다는 말을 무시하고 옷을 가볍게 있고 다니다 결국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게 되는 순간이나 오락실에 너무 가고 싶어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댔다가 부모님께 걸려 크게 혼나는 순간들이 그랬었다. 그럴 때면 늘 타임머신의 발명이 내 세대에 이루어지길 기원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미 저지른 실수는 되돌릴 수 없고,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실수를 할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부터일까? 겸허하게 실수와 내 잘못을 받아들이고 대처에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며 익숙해지며 돌발적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태도도 갖게 해주었기 때문에 때로는 그런 경험들을 무기라 생각하게도 되었던 것 같다. 반성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성 관계를 고민하다 1년을 우울증으로 보냈던 적이 있다. 침대에 누워 슬픈 음악을 들으며 노래 속 가사가 마치 내 이야기와 비슷하다 여기며 시니컬한 감정에 취해 대학교 2학년의 시기를 허비해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큰일이었기에 그러냐고 물으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고민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과 연애를 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좀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미숙한 내 모습보다 더 미숙했을 스무 살의 나를 감안해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 여자애는 1학년 댄스 동아리 활동 중에 알게 된 동기였다. 춤도 못 추는데 과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동아리에 가입하고 그 이후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 유난히 나를 챙겨주었던 여학생이었다. 지금부터는 편의상 J라 칭하겠다. J는 춤을 잘 추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동아리를 금방 탈퇴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보냈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연락이 그 학생에게는 연락의 시작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 후 매일같이 연락을 통해 안부를 물어주고 실제로도 많은 도움을 주며 내 생활과 주변을 챙겨주었다. 시험기간이면 다른 강의를 듣고 있지만 내가 듣는 강의 교수님의 족보를 구해주었고, 시험을 마치고 나면 항상 ‘아구 우리 도윤이’라는 말을 붙이며 고생 많았다며 격려해주었었다. 가끔은 ‘엄마인가?’ 오해할 정도로 정말 마음이 따뜻했던 그 친구와 달리 분수에 안 맞게 나는 그 친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내 마음은 고마움과 호감의 경계에서 고마움에 가까이 있을 거라 여겼고, 조금씩 그 친구에게 선을 그어 자연스레 연락이 줄어들게 되었다.
1학기 여름 방학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J에 대해 물었다. 친구는 J에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안됐지만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친구와 J와 함께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J는 드디어 우리가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둘이 시간을 가지라는 명목으로 먼저 기숙사에 들어갔었다. 죄책감이었을지 아니면 다른 마음이었을지 모르는 생전 처음 겪는 오묘한 감정들이 섞여 밀려들어왔었다. 친구에게 잘 되었냐는 안부를 차마 묻지 못했던 건 뒤늦게 나도 J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보낸 연락에 J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좋았겠지만 그 이후의 나의 행동은 찌질함의 연속이었다. 계속해서 J와 가까워질 기회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J는 늘 밀어내기 바빴었다. 시간이 지나 들었지만 셋이서 저녁을 먹은 이후 J는 방에서 오열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더 구질구질해지게 되었다. J의 마음과 상관없는 나의 이기적인 노력 끝에 잠깐이나마 같이 해변을 걸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J는 그 날에도 나를 정중히 거절했었다. 그 후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위의 내용과 같다.
문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고 싶어도 편을 들기 힘들 정도의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기에 스스로를 많이 원망했었던 시간을 보냈다. 부끄럽게도 시간이 지나며 그 때의 흑역사가 조금씩 잊히고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연애를 하며 같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이별을 겪었지만 그 때와 같은 부정한 일들은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 혹은 서로의 호감의 연결선이 달라 거리를 두어야하는 상황에도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책임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만 생각하여 상대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태도를 우선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후에도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잊어가는 경험들을 반복해왔다. 마음이 여려 실수들에 크게 좌절하고 자존감이 떨어졌던 적이 많았었는데 최근의 나를 보면 실수의 중함이 약해지고 일이 벌어져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실수하며 느낀 생각들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비석에 하나씩 새겨나가며 조금씩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 굽어져 있는데 타고 갈 때에는 직진이라고밖에 생각 안하잖아요.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있고 그게 인생인 것 같죠.”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성분께서 하신 말씀이다. 인생을 기찻길에 비유한 말이 퍽 멋있었다.
그래서 내 인생도 기찻길에 비유하면 나는 처음부터 나의 길이 굽어져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목적지에서 벗어나는 기차를 보며 많이 흔들리고 힘들어 했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때로는 우천이나 폭설과 같은 기상 문제나 혹은 앞의 기차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열차가 지연되기도 했었다. 굽이져 가는 기찻길 속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기에 이런 위기에 했어야 했을 모범적인 일들을 기억하고 실천할 때가 있었다. 그 덕인지 ‘그래도 조금씩은 종착지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잘못 들었다 여긴 길이 지름길로 변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J의 이야기로 돌아가 그 때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 연애를 하게 되었다면 도덕적인 책임도 면할 테고 찌질의 역사도 겪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상황에서 나의 미숙한 태도로 인한 더 큰 실수가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당시에는 비극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어쩌면 다른 상황에서 겪을 비극의 예방주사가 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고를 겪지 않고도 현명하고 바른 선택을 해오는 사람도 많을 테지만 나는 아직도 둔하고 배울 게 많은 경험주의의 사람인 모양이다. 계속 실수하며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
대학교가 좁아 가끔은 건너건너 J의 소식을 듣게 된다. 좀처럼 연애를 못했었던 J였는데 최근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남자친구 사진을 올린 건 처음이라고 하니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었던 나를 되돌아보며 ‘조금은 사람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어쩌면 기찻길같은 건가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목적지에만 잘 도착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