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예찬

by 리자

"아들 예찬"이라는 제목을 쓰고 보니, 얼핏 보면 사람 이름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장예찬'처럼 이름으로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예찬"은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던 날들에 대해, 그리고 마음과 달랐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26살에 결혼해서 바로 아이가 생겼다. 만삭이 되도록 입덧하며 토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입덧으로 고생했는데 아이는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엄청난 태동으로 어느 날은 '엄마, 여기 손이야' 하듯 손을 내밀고, 또 하루는 '여기 발이야'라며 발을 내밀었다. 임신 중에 큰 기쁨을 주었던 아이는 세상에 나온 후에도 내게 행복을 안겨주었다.

ㄷㅎ이는 운명 같은 아이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자녀 없이 살았을 것이며, 그랬다면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즐거움, 행복, 슬픔을 몰랐을 거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까칠하게 살았겠지. 물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동안 힘든 적이 많았지만, 늘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되고 성격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이는 순했다. 사춘기에도 그다지 힘들이지 않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한 효도가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랬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다. 처음으로 말한 단어는 아빠였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아빠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말해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이해하고, 말없이 도와주며 츤데레처럼 필요한 것을 척척 챙겨주는 아이였다. 그렇게 이쁘고 귀한 아이는 7살에 아토피를 앓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가려움과 싸우며 움츠러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 집으로 이사하며 시멘트의 독이 아이에게 갔다.
아토피가 발현되고 이사를 가려고 했지만 남편의 반대가 심해 주저앉았다. 지금도 주저앉은 것을 후회한다. 좋다는 민간요법(무, 참기름, 황토, 쑥물 샤워 등)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좋아지지 않았고 아토피는 오래도록 아이를 괴롭혔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며 아토피가 사라졌다가 대학생이 되어 다시 재발했다.

대학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지만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적당히 섭취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어려서는 많은 것들에 제약을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지했다. 정보에 대한 선택과 판단이 부족했다.

우연히 비타민d 수치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검사 결과 ㄷㅎ이의 수치는 '10'이었다. 뼈가 아프다고 하여 한 검사에서 낮은 수치가 나왔다. 고용량 비타민d를 수개월 복용 후 아이의 몸 곳곳에 있던 아토피가 사라졌다. 의사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했지만, 비타민d 복용 후 더는 아토피로 고생하지 않는다.

아이를 보며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도 남들만큼의 욕심이 없는 것에 마음이 급해지며 잔소리를 하려는 나를 보며 "리자야,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됐다."라고 혼잣말을 한다.

엄마는 언제나 너의 삶을 응원해. 엄마는 네가 늘 잘 되기를, 건강하기를, 즐겁게 살기를, 정의롭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기주의자 리자의 십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