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장석주)

by 리자

2025년-517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장석주/달 출판사

장석주는 자신을 시인,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라고 소개한다. 작가를 문장 노동자라고 부르다니 신선했다. 작가는 매일 하루 8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니 문장 노동자라고 칭할만하다. 내게 한 시간 동안 글을 쓰라고 한다면 나는 쓰다가 쉬고를 반복하겠지.

이 책은 산문집으로 "돌아본다, 걸어본다, 헤아린다, 쉬어간다, 기억한다"라는 목차 제목이 꽤 마음에 든다. 작가는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표현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진다"라는 문장은 내가 살아온 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보다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나도 그런 인생에 들어섰으며 곧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들 ㄷㅎ은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 시절을 지나며 하루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많아지면, 평범한 일상이라도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장석주 작가는 남동생의 첫아이 이름을 "여름"이라 작명하여 남동생에게 줄 만큼 여름을 좋아하며, 복숭아 한 입 가득 베어 먹으면 입안 가득 찬 과즙에 행복하며, 앞으로 맞이할 여름이 몇 번이나 있을까 헤아려본다.

밤을 좋아하는 장석주, 책에는 밤에 대한 글이 있다. 밤에는 지친 몸을 뉘일 수 있으며 밤이 없다면 삶의 반도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어둠을 무서워한다.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어둠이 싫어 밤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를 읽으며 '혼자에 대하여' 부분이 좋았다. 고독은 버림받음이 아닌 자발적이면서 의도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고독, 쓸쓸함, 외로움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지만 그것 때문에 우울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지금 이렇구나'하고 인지하면 견딜 수 있다. 내 유전자에 고독과 외로움, 쓸쓸함 DNA가 있는 채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실패의 경험도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한다.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실패의 경험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그 경험을 지렛대 삼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베푼다고 말하는 작가. 문득 바라본 구름 한 조각에, 문득 만난 어떤 길을 보며 영혼을 살찌운다. 이 책 곳곳에 니체가 나오는데, 나는 어린 시절 니체의 책을 읽으며 어려웠던 기억으로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장석주는 왜 책마다 니체를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독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것을 시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독서의 장점을 또 깨우치며 독서에 대한 결의를 다져본다.


본문

p.23 풍경을 바라보는 자는 그 바라봄을 통해 내면 기운의 변화에 닿지요. 그러니까 풍경을 보는 자는 그 풍경 너머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5 "어때요? 살 만했나요?" 누군가 인생의 맛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테다. 혼자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겠지. 인생이란 아주 씁쓸한 것만도, 그렇다고 달콤한 것만도 아니었지만,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p.67 가을이 저 안쪽에서부터 깊어간다. 바람이 분다, 아아, 다시 살아봐야겠다!...
가을밤은 일찍 오고, 창가에 등불을 밝힌 채 귀뚜라미 우는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책을 읽을 때, 아아, 이 가을, 내가 살아 있음이 미칠 만큼 좋다.

p.90 만사에는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을 뒤에야 비로소 보람과 열매가 따른다... 시작을 시작하라! 더 많은 시작을 품을 때 경험의 촉도 넓어지고, 더 넓은 가능성의 세계로 도약할 가능성이 커진다.

p.93 한 해의 끝은 새해의 시작이다.

p.106 "문학이 비록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불행에서 우리를 지켜내도록 도울 수는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p.132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말 날마다 오니까." 거트루스 스타인

p.144 여행이 두 발로 돌아다니며 하는 독서고, 독서가 한자리에서 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둘은 기묘하게 닮았다. 우리의 여행은 오직 달콤한 몽상과 멜랑콜리로만 이루어진다.

p.172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도구 중에 가장 경이로운 것은 책이다... 책은 상상과 기억에서 발생한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살아야 하는 이유(강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