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포도 Jul 08. 2022

남편을 증오했었다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을 증오했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엉망이 된 몸둥아리도, 육아를 돕던 엄마가 암에 걸려 아픈 삶을 살게된 것도, 육아를 이유로 커리어를 포기해야만 했던 것도, 모두 다 남편 때문인 것 같았다. 


퇴근길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그의 숨소리가 미치도록 싫었고, 입을 쩝쩝 거리며 허겁지겁 먹는 그와의 식사 시간이 지겨웠다. 그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그와 공유하는 내 삶이 행복하지 않았고, 하루라도 빨리 이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매일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보니 인생 참 아이러니했다. 


그러니 남편과 똑 닮은 아이도 예쁘지 않았다.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견디며 무거운 배로 열 달 동안 품었고, 마른 눈물을 삼켜가며 고통 속에 낳았고, 여자로서의 예쁨을 포기한 채 희생하고 있는 건 나인데, 왜 아들은 내가 아닌 그를 닮은 걸까. 억울한 마음에 분통이 터졌고,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남편에 대한 증오심은 나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맛도 없고, 멋도 없고, 낙도 없었다. 갓난아이를 옆에 두고 매일 술을 찾았다. 취하면 적어도 잠들 수는 있으니까. 그 때 나의 모든 순간은 분노로 얼룩져 있었으며, 온 가족이 내 기분을 살피느라 하루종일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나는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울증이었다. 병원에서 진단 받은 정확한 병명은 '우울성 분노조절 장애'. 나원참. 살다살다 별 걸 다 걸려본다. 약을 먹었고, 약을 먹으면 좀 살 것 같았고, 좀 살 것 같으면 더 많은 걸 원했다. 한마디로 지랄병이었다. 


나의 가족들은 그렇게 몇 달을 괴물과 함께 살았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참 미안하고, 고맙다. 특히 그 시간을 견뎌준 나의 남편에게 특히 고맙다. 






억울해하지 말자.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으니 '왜 나만 이래?' 하는 억울한 마음을 갖지 말자. 


다크써클을 질질 끌고 다니던 당시의 나에게 누군가가 해주었던 말이다. 마치 국어책에나 나올 법한, 다 알고 있는 평범한 말이지만 이 말이 왜 그렇게 나를 울리고 다독여주었는지 모르겠다. 이해해주는 것 같았고, 안아주는 것 같았던 것 같다. 아빠를 안치했던 그 날만큼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시간에게도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렇다.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이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들어오던 이유가 조금이라도 빨리 육아를 돕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허겁지겁 밥을 먹던 이유 역시 나의 한가로운 식사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루 아침에 두 아들의 아빠가 되어 강제로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게 된 남편의 인생 2막도 나만큼이나 부담스럽고 힘겨웠을 거라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금도 여전히 남편과의 관계는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한다. 나도 참 나지만, 남편도 참 남편이다. 우리는 왜 매번 같은 이유로 싸우는 걸까? 지겨운데, 또 이런 게 지겨운 결혼 생활의 묘미인 것 같기도 하고.


내 결혼 생활에 대한 의문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의문으로 번지곤 한다. 다들 그렇게 말리는데도, 대체 왜 결혼이라는 걸 하는 거야?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이 결혼 꼭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결혼식 날짜를 향해 직진하고 있겠지? 


궁금하면 한번 해보라. 당신의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니 넉넉히 들고 입장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