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산책로에 보라색 꽃이 피어있었다. 시청에서 아파트단지 환경조성을 위해 지원해 준 예산으로 꾸민 꽃밭이라고 했다. 외국의 유명 관광지만큼은 아니지만 아파트 두 개 동을 지나는 뒤쪽 산책로 가로수 아래 공간에 보라색 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유행처럼 일본 삿포로의 라벤더 농원과 프랑스의 라벤더 농원이 포함된 관광 상품이 TV에 자주 소개되어 이제 우리나라도 라벤더 붐이 인 줄 알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늘은 어떤 꽃을 그려볼까 서성이는 내 앞에 도서관 앞마당에 핀 보라색 꽃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어와 함께 배우는 이들에게 오늘은 라벤더를 그리겠다 소개하니 “이거 라벤더 아닌데... 이거 맥문동이에요!”하신다. “라벤더의 한국 이름이 맥문동 아닐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아니에요 맥문동과 라벤더는 다른 꽃이에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라벤더와 맥문동을 비교 검색해 보았다.
라벤더는 지중해 원산의 꿀풀과 라벤더 속의 상록 관목으로, 라벤더의 주 향기 성분인 ‘리날룰’ 성분이 진정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불면증,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에 기인한 불면증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라벤더 오일은 빠른 치유를 돕는 방부성, 진통성, 세포재생 증진성이 있어 상처소독, 염증 치료, 벌레 물린 데 등에 효과가 있고, 화상을 입었을 때에도 응급처치에 좋다고 한다.
맥문동은 비짜루목 비짜루과(백합과-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맥문동의 덩이뿌리를 말리면 반투명한 담황색이 되는데,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거나 폐장의 기능을 돕고 기력을 돋우는데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이것을 강장·거담·진해·강심제 등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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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식물의 공통점은 30-50cm 자라며 추위에 강해 월동을 한다, 기다란 꽃대위에 보라색 꽃이 덩이 져 핀다. 다른 점은 맥문동은 난초처럼 기다란 잎이 뿌리 부분에서 자라며 라벤더는 로즈메리와 혼동될 정도의 잎사귀 형태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 나이 먹도록 주변에 모기약이며 목욕용품이며 방향제며 라벤더가 그려진 제품 속 사진들을 주의 깊게 한 번도 살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식물화를 계속 그려야겠다. 느린 걸음 뚜벅뚜벅 하나씩 들여다보며 이름 붙여 불러주어야겠다.
식물화의 기초에 지식이 없어 끙끙대는 내게 선생님은 ‘식물 그리고 사람’이라는 책을 권하셨다. 미리 보기 화면을 통해 살짝 들여다본 책의 작품들은 자기만의 색깔로 단순하고 무심하게 툭툭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렸을 뿐 섬세한 표현에서 어마무시한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그나마 선생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어 오늘은 맥문동의 잎사귀를 난을 치듯 그려보았다. 그리다 보니 맥문동의 줄기와 기다란 잎이 같은 굵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방된 듯 마음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