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큰오빠에게서 갑작스러운 전화가 왔다.
97세가 되신 친정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이제는 요양병원으로 모셔야겠다고 한다. 놀란 마음에 부랴부랴 챙겨서 올라갔다. 이제는 스스로 앉지도 못할 만큼 거동도 어렵고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죽이나 부드러운 케이크마저 못 드시겠다며 거부하신단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하다. 그럼에도 요양병원을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집에서 죽겠다. 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 하시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치시며 팔을 휘저어 나를 때리는 시늉을 계속하신다. 아버지는 한평생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손찌검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는 분이셨다.
자녀들이 둘러앉아 몇 달만 몸이 회복되실 때까지 병원에 계시다가 집으로 오시면 된다. 우리가 자주 찾아뵐 것이고 큰아들이 날마다 뵈러 갈 것이다. 가까운 곳이니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가져다 드리겠다. 그곳에 아버지의 지인도 계시는데 만족해하신다. 온갖 설득을 한 끝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황에서 구급차가 도착하고 구급요원들이 들어와 병원으로 모셨다.
구급차로 병원에 먼저 도착하신 아버지는 마지막 자존심인지 의사 선생님께 자신의 경력과 의견을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잠시 후 우리와 만난 간호사는
“아버님의 위세가 대단하시네요!”
“네, 아버님이 좀 그런 면이 있으세요”
환자 보호자로서 여러 가지 간단한 서약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거동이 어려운 중증 환자는 저녁에 낙상사고의 위험도 있고 옆침대의 환자들과 불필요한 마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장갑을 끼워도 되겠냐고 묻는다. 장갑이 뭐냐는 물음에 상처 없이 난간에 손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돌봄 중 안전사고 발생으로 인한 환자의 보호자들과의 소송과 배상책임에 대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한가득 심란해진다. 좀 더 지켜본 후에 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기도절개를 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는 큰 병원으로 이송함에 동의한다는 서약서도 있었다.
여러 장의 서약서에 서명을 마치고 병실을 들러보고 싶다 했더니 간호사는 지금은 적응이 안 되어 있는 상태라 다음에 뵈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한다. 지인의 어머님도 계시고 좋은 병원이라 소개는 받았지만 아버지의 병실은 어떤지 염려가 되어 병실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이미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저녁식사를 침대에 받아둔 상태였다. 간호사가 밥을 조금 떠서 국에 말아 권해 드린 듯했다.
“내가 저녁 안 먹겠다고 했는데 왜 여기에 식사를 가져오는 게야!”
아버지의 두 눈에 노기가 가득하다. 곧 식판을 엎어버릴 기세다.
“나가자 얼른 나가, 우리 때문에 더 화가 나신 거 같아.”
놀랜 오빠가 나가자며 속삭이듯 나를 밀친다. 자녀들이 보이자 병원으로 모셨다는 원망이 한순간 터져 나오는 듯하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단다. 저녁 내내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시며 주먹으로 벽을 치셔서 옆 침대 환자분들과 직원분들이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예방차원의 장갑과 수면제를 처방하겠다고 한다. 안전을 위한 약물과 제어가 아버지의 자유와 존엄을 통제당했다는 생각에 못 견뎌하시는 듯하다. 이삼일이 지나자 얼굴도 좀 환해지시고 진통제 덕분에 허리통증도 좀 줄어들자 집에 가겠다고 계속 소리를 치신다고 한다. 언니는 아버지를 일인실로 모시고 전담 간병인을 붙이자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평안해지실까? 또한 집으로 돌아간들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말이다.
퇴직 즈음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퇴직 후 타인과 어울려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을 것,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을 것, 우리나라처럼 의료체계가 잘된 나라가 없으니 이민은 생각하지 말 것, 삼 년 병시중에 효자 없으니 적당히 외롭고 아픈 것은 마음 독하게 먹고 버틸 것, 집의 모든 구조를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할 수 있게 변경해서라도 자신의 집에서 최대한 오래 살다가 마지막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을 때 요양병원을 택할 것 등의 노년기 사회참여와 정신적, 신체적 건강관리등 여러 내용들이 내 코앞에 다가온 듯 느껴졌었다.
소설가 김훈의 『팔십을 바라보게 되니까』의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 생활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한 구절처럼 나도 그렇게 훌훌히 털고 선선히 가게 되기를 희망한다.
아버지의 치매증상이 시작되던 몇 년 전부터 돌봄과 웰다잉에 관한 책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지럽고 아프다. 인간으로서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내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