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lviatis
Aug 16. 2024
엄마가 되어 엄마를 안다
내가 딸을 낳고 챙겨주다 문득 엄마가 준 필통의 의미를 깨닫다.
유나 데이케어에서 공지가 온다.
"이번 달은 식물 콘셉트입니다, "
그래서 뭘 심었고, 뭘 배웠고, 등등
이메일에는 솔찬히 읽을거리가 많다.
5월에는 개인 사진 촬영, 반 단체사진 촬영이 언제 있을 예정이고, 이번 주 금요일은 파자마 데이라 파자마를 입혀오라고 한다.
행여 날짜를 까먹거나 잘못 알아서 유나가 참여를 못할까 봐 달력, 휴대폰, 플래너에 다 입력해 넣고도 정신을 한 번 더 차리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엄마가 내가 학교 갔다오면 제일 먼저 가방에서 학교에서 나눠준 공문을 뜯어보고 또 뜯어보던 모습이 생각났다. 벽에 붙여놓고 무언가 열심히 되새기고 되새기는 것 같았다. 이제 생각해 보면, 엄마는 이 낯선 나라에서, 낯선 문화에서 엄마가 공지사항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행여 뭐라도 놓칠까 봐 긴장을 하고 준비물을 챙겨줬던 것 같다. 크레용이랑 연필 넣고 다닐 필통을 사가야 했는데, 시중에 파는 허접한 것보다는 더 확실한 걸로 가져가도록 엄마는 타파웨어 (Tupperware) 형광 핑크와 노랑의 조합의 '통'을 챙겨줬었다. 막상 학교에 가져갔는데 규격이 달라서 나는 그 통을 책상 서랍 안에 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집에 와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며, 엄마는 왜 이해를 못 하지? 생각하며, 나도 다른 애들처럼 그냥 평범한 빨간 플라스틱 필통 (school box)을 사달라고 했었다. 미국 학교 교육과정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짐작으로 '아, 필통 같은 게 필요하구나'하시고는 제일 좋을 것 같은 통을 준비해 주신 거였다.
지금은 필통이 아닌 바느질 통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나는 그 통을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태평양을 여러 번 건너 다녔고 미국 내에서도 여러 주에 걸친 이사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엄마가 골라서 챙겨준 그 마음을 어렸을 때였었지만 느꼈었기에 애착이 나도 모르게 생긴 게 아닐까?
가정통신문과도 같은 이메일을 읽으며,
우리 유나 반은 언제가 사진촬영일이니 옷을 어떻게 입혀야 할지, 잠옷 입고 학교 가는 날도 잊지 않고 그 전날 잠옷을 빨아놔야 하는 계획 등등을 세우며, 문득, 달력 앞에서 무언가를 꼼꼼히 맨날 자꾸만 체크를 하고, "유정아, 학교에서 그 거한건 뭐였어?"를 왜 자꾸만 물었는지에 대한 30여 년 전의 의문이 오늘에서야 풀렸다.
어버이날을 10년 넘게 직접 못 챙겨드리고 있고,
늘 당연스레 엄마아빠의 사랑을 여기고,
내 새끼를 낳고 키우면서도,
엄마가 나 키울 때 어떤 심정으로 키웠을지 헤아리지 못했었는데, 오늘 데이케어에서 온 이메일을 읽다가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앞으로 왠지 엄마 잔소리를 견딜 수 있는 맷집이 늘어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