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lviatis Aug 16. 2024

식욕은 죽어야만 없어지는가

해정이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으로는 감바스를 먹고, 너무 느끼해서 남편이랑 각자 컵라면 하나 씩 먹었다며, 대신 국물은 안 마셨다고 해서 나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국물을 어떻게 안 마시지? 그래도 참, 인간미 넘치지 아니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옥아랑 나는 교환일기를 썼다. 너무나 조용한 친구라서 빨리 친해지고 싶은데, 이야기 할 기회가 없어서 교환일기를 쓰자고 했다. 그 일기장 한 권을 다 채우고 나서 내가 이사 갈 때 옥아는 나에게 그걸 선물을 해줬고, 나는 그걸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오랜만에 펼쳐보니까 내용의 대다수는 '아, 살 빼야하는데' 였다.


사람들이 대학 가면 살 빠진다고들 해서 그 말 만 믿고 대학을 올라갔는데, 왠 걸, 술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살은 늘 내 고민거리 1, 2 위를 다퉜다.


연애를 하면 살 빠진다는데, 살을 빼야 연애를 할테고, 여대를 다니는 나의 악조건에서는 살도 연애도 물 건너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서 너무나도 멋진 오빠를 알게 되었다. 친구 따라 성당 온 격이라 자주 보지는 못 했지만, 가끔 성당 오빠들 술 자리에 참석하기도 해, 늘 그 술자리에 있던 나로써는 확 눈에 띄고 싶다는 욕심이 내 인생 처음으로 생겼다.


운동으로 살을 빼기에는 너무 장기전으로 들어갈 것 같고, 단 기간에 승부를 보고 싶어서 '효소 다이어트'라는 선택을 했다. 대학생 돈으로 140만원이라는 큰 돈을 들여 사오기는 했는데, 막상 종이 상자를 열어보니, 딱 14병의 박카스 2배 크기 되 보이는 유리병들을 받아보니, '에게, 이게 다야?' 싶었다. 그래도 기왕 들인 돈, 헛탕치지 않도록 시작을 해 보았다. '효소 다이어트'는 그 효소 원 액기스를 물 1리터에 타서 하루 종일 그것만 마시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먹고, 오로지 효소 액기스 희석 물만.


그렇게 인고의 14일을 쌩으로 굶은 거나 다름 없게 지나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후로 보지 못했던 몸무게 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멋진 오빠가 나타난 술 자리에서 드디어 그 오빠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어, 살 빠진 것 같애? 이뻐졌다!

근데 그럼 뭐해, 그 오빠는 그 날 곧 결혼 할 거라는 선 본 여자와 함께 동행을 했었고, 사실 말이 오빠지, 나이가 나보다 14살이 많았기에 아저씨였지 뭐...


그렇게 심하게 김이 샌 이후, 쌩자로 굶어서 뺐던 살은 찰지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원상복구 되는데는 3일도 걸리지 않았다. 원상복구만 됐음 다행이지, 덤으로 2키로도 쪘고, 머리는 머리 대로 숭숭 빠지고, 살은 살대로 찌고 너무 속이 상했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노력을 했던 내 모습 자체가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뭔가 나를 이렇게 살도록 만드신 하느님의 원망 마저 들기 시작했다.


당시 신심 깊은 친구랑 꽃동네로 성령 세미나를 1박 2일로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얼마나 짜증이 났으면 수사님 면담을 신청해서 내가 몸무게에 대한 나의 고충(?)을 털어놨을까?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은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우습지만, 그 당시 나는 얼마나 절실했는지 모른다.


누가 보면, 내가 부단히도 큰 노력을 많이 했나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하고 먹고, "우울할 땐 매운 거", "그 날이 다가오니 단 거" 이유 불문하고 성실하게 먹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들이 점점 줄어들며,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느낌으로 늘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신물이 날 무렵, 유학길에 오르게 되어 미국으로 출발했다.


미국에오니, 물론 쭉빵의 늘씬이 언니들도 많았지만, 처음으로 '날씬한 축'에 내가 속하게 됐다. 인간 몸의 형태를 벗어나 드럼통에 더 가까운 몸매들도 자신있게 활보하며 다녔고, 헬스장도 다니면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많았다. 시장도 자전거 타고 왔다갔다하며 보았고, 모든 동선이 넓어진 관계로 나도 자연스레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몸무게 숫자에 대한 노이로제도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의 남편도 만나고 건강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 물론 나의 몸무게는 대한민국 건장한 남성의 평균 몸무게를 치고 있고, 우리 아빠도 (몸무게 상) 우스워졌지만, 이제는 애를 위해서 건강하게 살자는 마음이 더 크지, 48키로 만들어서 예쁜 옷 입고 싶다는 갈망은 없다.


예전에도 없었던 갈망이라 이제와서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다지 성공할 것 같은 가망성은 없지만, 그 또한 나는 괜찮다. 그래서 말인데 해정아, 너의 노력에는 내가 박수를 치고 응원하지만, 행여 잘 안 돼 속상하면 밥 먹으러 와.


부대찌개 끓여줄게, 소주랑 마시자.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되어 엄마를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