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이다
요새 인스타에 보면 자가 진단이 가능한 그런 검사들이 있다.
누가 보내줘서 해 본 ADHD에서는 50점 만점에 보통 주위 친구들은 한 28에서 30 받을 때 나는 48점이 나왔다.
근데 사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진단 기준을 모르더라도 바로 "어, 너 ADHD 맞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명하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를 보고 '과체중이다'라고 진단할 수 있을 만큼...
(여담 - 내가 딱히 주위가 산만하지는 않지만, 사실 그것도 90년대에 미국에서 주로 남자애들에게서 많이 나타난 양상이라서 ADHD의 흔한 증상이 인줄 알고 있지만, 여자애들에게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진단 기준이 업데이트 되는 바람에 이전에는 진단 받지 못했었던 사람들이 이제사 진단 받고 있어 성인 여자들 사이에서 늘어나는 것 처럼 보이는 중이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날짜 개념이 너무 없다. 누가 '시어머니 생신이 언제냐'고 물으면 나는 나의 두 시어머니의 날짜를 정확히 말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당일 날이 되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새하얗게 잊고 있을 때가 많다. 어버이날, 엄마 아빠 생신은 그래서 (자랑은 아니지만) 한 번도 제 때 챙겨드린 적이 없는데, 시부모님 생신마저도 그렇게 했다가는 집안 욕보일까 봐 정말 엄청난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친구들이 "이번 주 금요일 뭐해"라고 물었을 때 단 한 번도 스케줄을 제대로 알고 있는 적 한 번 없고, 약속이 있는데 또 잡는 경우도 허다해서 매번 번복해야 하는 게 내 일상이다.
그런 내가 딸아이가 학교를 들어가고나니, 어느 날은 애들을 학교에 잠옷 입혀서 보내야 하는 날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학교에서 단체 사진 찍는 날이라 단체티를 입혀 가야 하는 날도 있어, 여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내 일이면 그냥 "앗, 까먹었어요, 미안해요"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딸 아이가 나 때문에 행여 피해를 볼까 그런지 아주 잔뜩 긴장을 하고 지낸다. 그래서 휴대폰에도 넣고, 플래너에도 적어 넣고, 남편에게도 일러두고, 달력에도 표시를 해둔다. 하나 일이 있으면 여러 달력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입력이 잘 안 된다.
그리고 ADHD 때문인지, 늘 새로운 일만 좋아한다. 또, 난이도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매료되어 해결하겠다고 매달린다. 그치만, 그 일을 해결하는 동안에 나머지 다른 일은 다 올 스탑이다. 루틴한 일인 애 목욕시간, 이빨 닦을 시간, 재울 시간 등등이 굉장히 지루하고 따분하여 짜증이 난다. 설거지도 식세기에 다 되어있는 그릇들을 장에다 다 챙겨 넣는 일은, 이미 아는 것을 하는 루틴이라는 생각에 너무 지겹고 싫증 나는 일이라 미뤄둔다. (다행히, 빈 식세기에 그릇을 하나씩 착착 넣는 일은 별 거부반응 없이 잘 넣는다. 왜냐, 빈 공간에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새로운 패턴으로 집어넣는 일은 새로운 일이니까.) 빨래도 하는 것과 개키는 것은 좋아하지만 다 개 놓은 옷을 옷장으로 넣는 과정은 또 너무 지겹고 따분해서 싫어한다.
또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인스타그램 피드 속 어떤 정신과 의사가 올린 피드를 보고 또 절망감이 든 적이 있다. "남이 상처받더라도 꼭 해야 하는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사람, 한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돌려 듣는 것을 즐기는 사람, .."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저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자폐'가 있다는 것이다. 또 나잖아?
최악이다.
이런 내가 엄마라니. 한 생명체를 올바른 독립적인 개체로 키워내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 산만하고 심지어 자폐도 있대. 우리 딸은 어뜩하나...
이런 내가 사회생활 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할 지경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실력이 없는 나는 성질대로 뼈 때리고 성질 부리지는 못하고 납작 엎드려 사람 좋은 척하고 있다. 언젠가 진짜 실력 뽀록 나지 않길 바라면서 ㅋㅋㅋ 지금 내 위치 상 다행이 또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새로 주어지는 과업들을 흥미로운 퍼즐 대하듯 신나서 달려드는 편이라 일터에서는 내가 적극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긴 하다.
이런 불완전한 엄마이기에 더 심리학이라던지 육아에 관련된 영상이나 책을 더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이렇다라는 자각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우리 딸을 키우면서 나도 키우는 중인 것 같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우리 딸에게서 안 생기도록 나부터라도 고쳐보려 노력하느라 두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가장 말 안 듣는 고집 센 40년간의 아집이 있는 나와 이제 막 몰랑 몰랑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우리 다섯 살짜리 딸, 두 사람.
언젠가는 나중에 우리 딸이 커서 이 글을 읽고 이해할 날이 오면, 부족했던 나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이 상태에서의 최선을 선택했던 것이었음을 알아주는 날이 있겠지? 날짜 착각하고 늘 뭐 놓치기 일쑤일 테고, 분명 시간 까먹고 안 데리러 가는 날이 있겠지만, 그래도 자연을 역행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따 버스 정류장 앞으로 4시 27분까지 늦지 않고, 잊지 않고 나가있어야지...#알람맞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