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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tis Sep 17. 2024

밤에 피는 꽃장미 엄마

밤이면 밤마다

딸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갑자기 물었다.


"엄마, 탬버린이 뭔지 알아? 이렇게 동그랗게 있어서 딱딱 치면 챙챙 소리가 난다? 나 그거 하나 사줘!"


학교 음악 시간에 접해 본 모양이다. 그런데 눈을 뜨자마다 갑자기 나에게 뜬금없이 묻는게, 밤에 꿈에서라도 본 모양이다. 어찌나 귀엽던지. 탬버린을 아느냐 물었다. 알다 뿐이냐...


왕년에 이 엄마가 회식 2차로 간 노래방에서 탬버린 들고 신명 나게 놀다 그다음 날 왼손 손바닥이 시퍼렇게 멍들었던 사실을... 그리고 '회식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어냈다는 사실을?


항상 술은 성당 성가대 언니 오빠들이랑 같이 마시고 놀고, 여자 애들이 집에 간다고 하면 꼭 오빠들 한 둘이 따라붙어 집에 들어가는 길에 다 바래다주고, 왁자지껄 다 같이 '신앙의 신비여'하고 외치며 한 밤 중에 휑하니 빈 8차선 도로를 뛰어다니질 않나, 너무 신명 났다. 그래서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고 유쾌했고, 모두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매일 만나도 매일이 명절인 듯 떠들어 재끼며 마시고 놀았다. 성가대라고 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가대 정도에서 노래 부른다고 하면 마이크 뺏어야 할 정도로 못 들어줄 목청들도 아니라서 부르는 재미도 듣는 재미도 있던 자리였다. 그렇게 20대 초반을 신명 나게 학교-집-성당을 순회하며 살았기에, 그 밖의 세계는 잘 몰랐던 것도 있다.


게다가 여대를 다니다 보니 소개팅 아니고서는 '남자'를 만날 기회도 잘 없었다. 그런데, 놀아도 동네에서 성당 사람들이랑 늘 놀았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재미를 찾으러 눈을 돌릴 필요성도 덜 느꼈던 것 같다. 외로워야 연애에 대한 갈망도 있고 그 안에서도 어떻게 이루어지도록 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저기 껴서 놀아야 하는 나로서는 연애에 대한 갈망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정말 있는 열과 성을 다해서 찬양하고, 술 마시고, 그리고 웃고 떠드는 데에 20대 초반을 다 보냈었다.

 

그러고 회사에 처음 입사를 했다. 회사라는 곳을 마치 새로운 남녀공학 학교를 가는 마음으로 다녔다. 너무 재밌었다. 나는 유학 갈 마음이 있었기에 대기업이니 그 외의 곳으로 입사준비는 안 했었어서, 마냥 놀고 있었는데, 그 꼴을 못 보신 아빠의 등쌀에 못 이겨 당시에 대학생들 상대로 설명회 나온 중소기업에 원서를 넣고 된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여대 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처음에는 좀 삐걱삐걱 댔지만, 넉살 좋은 덕에 우리 해외영업부뿐 아니라 국내 영업부 사람들이랑도 친해졌다. 그래서 국내영업부 회식하는 날에도 연락받고 나가고, 우리 부서 회식 하는 날에도 나가고, 매일 법인 카드로 공짜로 먹는 밥과 술맛에 회사는 아주 재미난 곳이 되어버렸다.


나 같은 캐릭터를 참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나는 늘 나 같은 친구들이랑만 놀아서, 다 같은 마음이려니 했는데, 회사 다니면서 처음으로 아찔할 뻔 한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세상이 무서운 곳이라는 것도 배웠다. 금요일 밤마다 집에서 보던 '사랑과 전쟁'으로 연애를 배우고 속세 남자들의 심리(?)를 간접 체험했었는데, 마치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캐릭터들이 상사라고 앉아 있고, 다른 부서 부장님으로 있었었다. 회식에서 술을 진탕으로 먹고 여전히 그 흥에 취해 흥얼거리며 귀가하던 나를 아빠가 보시고 너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회사 생활의 재미에 맛 들리면 안된다시며 또 잔소리를 한 통에 유학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회사는 3개월 만에 퇴사하겠다고 했다. 퇴사하려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뜯어말렸지만, 그 당시 추파를 던지던 40살의 아저씨 상사 꼴도 붸기 싫었고, 또, 긴급회의라고 들어간 회의들에서 논의를 하던 안건들이 너무 내가 봐도 유치하다고 느끼는 바람에 다 떨쳐내고 그만뒀다. 회사는 그만뒀어도, 유학을 나가기 직전까지 나는 해외 영업부, 국내 영업부 회식이면 늘 초대를 받았었고, 하루 종일 GRE 공부만 하다 질령이 날 무렵 공짜 밥과 2차로 갈 노래방 생각에 흔쾌히 신나게 응했었다.


클럽 가서도 술 한 잔 안 마시고 노홍철 더티 댄스 맨발로 추며 강강수월래 하고, 새벽 2시에 집에서 빠져 나와 동네 성당 오빠들 다 불러내서 한강 가서 캔 커피 마시고 인생 얘기하며 '낭만'을 즐기던 나는 잘 논 언니였다. 정말 순수했고, 그 순수함 덕분에 당당했다. 그 당당함이 있었기에 어쩌면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캐릭터들이 두려워했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신앙의 신비' 덕에 험한 꼴 안 보고 잘 지나간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노는 언니보다는 잘 노는 (또라이) 언니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날 이 때까지도, 어느 모임에서 가서도(비록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도 있긴 하지만) 자신있게, 나는 노래방 가서 손바닥 멍 몰리도록 템버린 면서 놀았다고 얘기 할 수 있는 것 같다. 밤이 되면 방에서 잠 든 척 방에 불 꺼 놓고 살짝 나가서 동네 성당 사람들이랑 놀다가 들어오고, 한강 가서 불꽃놀이도 하고, 다리 건너 용산 CGV가서 영화도 보고 오고, 자전거 빌려 타고 멀리 자전거 타다 오는 등 .. 그렇게 밤에 피는 꽃 장미로 재미나게 놀았었다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그렇게 재미나게 같이 놀아줬던 주변의 친구들의 착함에도 고맙다.


여튼, 우리 딸은 음악실에서 본 템버린의 잠재능력을 모르겠지?

"템버린, 어디까지 쳐봤니?"--언젠가는 가르켜줄 (? 굳이 왜?) 날이 오게 되면, 부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지 않기를 바라는, 왕년의 밤에 피는 꽃장미 엄마가 딸은 안 재우고 여전히 이렇게 밤만 되면 또 뭔가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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