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뜰 때가 된건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써...사주를 믿어서는 안되지만, 잘 믿는 편이다 ㅋㅋㅋ
사주에 의하면 나는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근데 역마살도 두 가지 종류가 있어서, 집에 못 붙어 있고 하루 종일 밖으로만 나가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이사를 다녀야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태어난지 6개월이 되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첫 2년은 아이오와 주에서, 그 후 5년은 메릴랜드에서, 그리고 다시 서울로, 그리고 2년 뒤 대구로, 또 6년 뒤 미국으로. 또 1년 후에 대구로 온 후 2년만에 다시 서울에서 대학교 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2년을 살고 지금 이곳으로 왔다.
이 곳으로 이사를 처음 들어오는 날부터 단추를 아주 세게 잘못 끼운 것 같이 시작했다.
장농면허 6년으로 그저 무늬 뿐이었던 먼허증 하나 믿고 내가 운전대를 잡아서 봉고차 같이 큰 밴에 나의 모든 짐을 싣고 이사를 와야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원래 4시간 운전하면 됐을 거리가 허리테인 카타리나로 인해서 8시간이나 걸렸다. 분명 집을 구하러 왔을 당시에는 동네가 좀 괜찮아 보였었는데, 한 밤중에 도착해서 보니, 앞으로 내가 적어도 1년은 살아야하는 월세집은 우범지역의 노른자위 자리에 있었다.
그 집에서 천장이 내려 앉는 일도 있었고, 자동차 사고도 매 해 한번 씩 났었는데, 여기 온 근본적인 이유였던 박사 생활도 지도 교수로 인해 불지옥을 경험했었다. 학생에게서 지도교수라함은 태아와 탯줄과도 같은 관계인데, 섞은 동앗줄을 잡은 줄 모르고 4년을 보냈었고,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정말 억울하고 힘들었던 일 투성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박사 학위와 덤으로 우울증도 얻으며 그 과정을 다 마쳐냈었다.
그리고 시작한 첫 직장에서는, 드디어 엄마 아빠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희열은 잠시, 실력없는 금발의 여자애들의 텃세에 몸살이 시작 됐었다. 그래도 내 실력을 믿고, 열심히 한다면 그 따위 정치 바람에는 끄떡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름 심지 굳건히 버티며 지냈었다. 회사일에 목을 메고 나의 모든 정체성과 결부짓지 말자고 끊임없이 스스로 다짐을 했었고, 이거 아니어도 내 인생을 꽤 괘찮다고 자부했다.
그 당시 지금의 남편도 만나 결혼도 하고, 첫 집도 사고, 아기도 가지는 등, 앞으로 더 나아질 일 뿐이라는 희망 속에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워 지면서 회사 내에서의 내 입지가 약해졌고, 텃세와 질투와 정치 몰이에서 도마 위에 오르게 되게 될 상황이 왔었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약간 성경 속 탈출기를 겪은 것도 같다. 나의 밥줄이 흔들린다는 불안감과 어린 아이를 키워내야만 하는 손, 발이 다 묶인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주 2회는 꼭 회사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의 그 분노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치가 떨린다. 그걸 빌미로 불이익을 당할 뻔 할 시점에서 지금 내가 일하는 부서에서 러브콜이 왔고, 그렇게 나는 내 몸 털끗 하나 그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자존심 무너지지 않고) 나올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 부서에는 내가 무한 충성과 감사함이 있다. 그리고 또 나를 승진도 시켜주고, 또 새로운 좋은 기회가 나오면 늘 나에게 우선권을 줬기 때문에 그 이전의 설움과 핍박(?)은 다 잊혀졌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의 마음과 나와서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아니면 지긋지긋한 나의 ADHD가 도진 것인가? 익숙해지는 일 속에서 나는 흥미를 잃어가고, 또 내 생각에는 별로 의미 없는 일들에 과도한 열과 성을 내고 있는 상사에게 실망을 하고 있을 무렵,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지난 번 때도 걱정이 많았었지만 생각보다는 피해가 덜했기에 이번에도 뭐 그렇게 나빠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정말 기상 천외한 일을 벌어지고 있고, 철밥통이라던 공무원들의 밥그릇까지 흔들어 제끼고 있다.
그래서 또 한 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밥그릇이 도마위에 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같은 처지라 나 혼자 설움 탈 이유는 없지만, 익숙한 아픔이라 했던가? 이전에 지도교수에게 당했던 일들과, 백인들의 두 얼굴, 동양인은 이끄는 리더 역할보다는 말없이 시키는 일이 어울린다는 선입견 등등에 이 모든 상황들이 뒤얽혀 불안증이 도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여기 이 곳에서만 내가 14년을 보냈다. 처음 와서부터 속 편히 살도록 해주지 않았던 이 곳에서 어쩌다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물스물 역마살이 도질때가 된 것 같다. 근데 이게 진짜 역마살인건지, 아니면 그저 이 상황을 모면코자 도피를 하고 싶은 핑계를 찾는건지 모르겠다.
초년에 역마살이 많았다 했던가?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동양인들에 대한 이해도가 지금 이 곳 보다는 조금 높은 곳에서 살고싶다는 것이다. 역마살에 몸을 맡길 것인지, 이 상황을 이 악물고 배짱 두둑하게 견디어 낼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의 이 불확실함을 또 견뎌야 하는 것은 2-30대때 해 본 것이라 좀 의연해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었다고해서 꼭 다 좋아지지만은 않는것 같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나는 또 탈출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