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의적 사고의 힘 May 27. 2024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I

초짜들이 세상을 바꾸는 기분 좋은 이야기


초짜들의 반란! 세상을 바꾸는 기분 좋은 이야기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광고 탄생 배경 



캐나다 수석 부사장이 건네준 뮤직 비디오테이프 


광고 팀장으로 발령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뜻밖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호주인 수석 부사장이 저를 호출한 것입니다. 그는 합작회사에서 파견 온 분이었지만, 마케팅 담당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그는 VHS 테이프를 함께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비서가 비디오를 재생하자, 우리는 홍콩에서 제작된 뮤직비디오를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디오는 젊은 청춘들의 삼각관계를 다룬 내용으로,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였습니다. 


비디오가 끝난 후, 수석 부사장은 깊은 감동을 받은 듯 자신의 감상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테이프를 저에게 건네주며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들고 방을 나왔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그날 저녁 퇴근 후 집에서 다시 테이프를 틀어보았습니다. 낮에 수석 부사장과 함께 시청할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다룬 뮤직비디오의 참신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영상미가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수석 부사장은 이런 스타일의 콘텐츠를 원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보다, 이러한 컨셉을 광고로 변환하여 TV CF로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뮤직비디오는 아직 초창기 시절이었으며, 긴 시간의 비디오를 틀 수 있는 매체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또한, 팀장으로 발령받은 이후에는 새로운 광고 소재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당시 히트곡인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가 떠올랐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와 분위기를 광고에 활용하면 화제를 모을 수 있는 멋진 작품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노래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활용하여 삼각관계를 표현하면 임팩트가 배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첫 번째 시련: 팀원들의 반발 


다음날 아침, 흥분된 상태로 출근하여 팀원들을 기다렸습니다. 당시 광고팀은 경력 사원 두 명과 갓 들어온 신입사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소집하고,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삼각관계를 주제로 한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광고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경력 사원 두 명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들은 기존에 해오던 광고 스타일과 제작사와의 관계, 빅 스타 배우와의 계약을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불신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태도가 역력했습니다. 


회의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제 책상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그들의 반대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려 했습니다. 물론 팀장이 갑자기 바뀐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자부심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설득할 시간도, 기다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때 회의 중 수줍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신입사원이 떠올랐습니다. 그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팀원들은 다 반대하는데, 당신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와 함께 새로운 광고를 만들어볼래요?" 그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창의적인 TV CF 감독을 찾아라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타이틀로 광고를 제작하기로 결정한 후, 가장 큰 고민은 5분이나 되는 뮤직비디오의 스토리와 영상미를 15초 안에 어떻게 함축해서 보여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할 창의적인 CF 감독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기존에 팀에서 고용하던 감독이나 대행사들이 추천하는 감독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시도하는 광고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에, 새로운 시각과 도전 의식이 있는 창의적인 감독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새벽까지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가며 광고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장르에 상관없이 스토리와 영상미를 갖춘 광고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어느 샴푸 광고에 눈길이 갔습니다. 15초의 짧은 시간임에도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있고, 매력적인 영상미가 느껴지는 아주 인상적인 광고였습니다. "바로 이거야!" 하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초짜 감독과의 만남 그리고 그에게서 나온 빅 아이디어 


다음 날 회사에 일찍 출근하여 알아보니, 어제 그 샴푸 광고의 감독은 서울대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갓 데뷔한 청년이었습니다. 전날 느낌 그대로 바로 이 감독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감독과의 미팅을 추진했습니다. 그에게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컨셉을 주고 TV 광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청년 감독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몸은 왜소하나 눈빛이 살아있는 예술가 같았습니다. 저는 광고 컨셉을 다시 설명하며, 이런 컨셉을 살릴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때 그는 일본 만화에서 본 한 장면을 조심스럽게 얘기하며 제 앞에서 직접 스토리보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려준 손바닥에 전화번호 적어주는 컷을 보고 바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자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자는 자기 여자 친구의 친구인 여자 손을 잡고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가 돌아올 때 그 여자는 손바닥을 접으며 전화번호를 감춥니다. 


와~ 저는 신기루를 본 것처럼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장면은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삼각관계를 단 한 컷으로 표현하는 엄청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원빈의 여자친구인 김효진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원빈이 김민희의 손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TV 광고 장면)


두 번째 시련: 그룹 오너 부회장의 분노 


청년 감독과 하루 만에 스토리보드를 완성하던 중, 갑작스러운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상관인 부사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룹 부회장 앞에서 광고 기획안을 발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움과 혼란이 밀려왔습니다.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광고 기획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회장이 이미 알고 모든 것을 보고하라는 것인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과 긴장감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처음으로 부회장 주재의 미팅에 참석하게 된 날, 그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제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간부들이 모두 자리를 채운 회의실은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광고 스토리보드를 들고 설명을 시작했지만, 부회장의 돌발적인 분노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초 안에 이렇게 많은 내용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나?" 부회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순간, 회의장은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식은땀이 흐르고 시간이 멈춘 것 같던 그때, 영업 부사장이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자네,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게."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돌아왔지만, 좌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좌절에 빠져 있던 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부회장의 비서로부터 스토리보드를 들고 부회장실로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한 후 부회장실로 올라간 저는, 열정적으로 뮤직비디오 스타일 광고의 핵심을 설명했습니다. 조용히 제 설명을 듣던 부회장님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군. 잘 만들 수 있겠나? 그럼 한번 멋지게 해 봐." 


지옥에서 천당으로 급상승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저는 부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회사는 합병되었고, 우리의 인연도 그와 함께 끝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경영 감각과 미래를 보는 혜안을 지닌 분이었기에, 만약 회사가 합병되지 안

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깊게 남아있습니다. 


(왼쪽 위에서 아래 그리고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TV 광고 컷: 보고용 스토리보드는 스케치임)


다음 주에 이어질 2부에서는 원빈, 김민희, 김효진과의 첫 만남 그리고 촬영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입니다. 계속 기대해 주세요!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TV CF 1편)

[창의적 사고의 힘]

이전 02화 미안하다, 사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