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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0. 2022

나는 반쪽짜리 공무원입니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마급의 이야기

   



  나는 시간선택제 임기제 마급 공무원입니다. 이름은 뭔가 길고 어렵지만, 시청 소속으로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기간제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공무원으로 전환시켜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길고, 어렵고, 복잡한 직급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정규직 공무원이라고 하면 ‘철밥통’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 정년이 보장되고 각종 복지가 훌륭한. 그런 자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정년을 보장받는 종류의 공무원이 아닙니다. 2년마다, 심한 경우 1년마다 연장 평가를 통해 계약 기간을 5년까지 연장할 수 있으며, 그나마도 5년이 지나면 당연 퇴직을 해야 합니다. 또한 공무원이기 때문에 기존에 적용받던 퇴직금도 없습니다. 임금은 낮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반쪽짜리 공무원일 뿐입니다.     


  뉴스를 보면 공무원의 임금인상률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인상률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언제나 9급 1호봉을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낮다고 이야기합니다. 를 비판하는 댓글들은 수십 년의 공직생활 중에 단 ‘1년’ 뿐이지 않냐고 반박합니다.


  난장판인 댓글을 보면서 우리 ‘시간선택제 임기제 마급’들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지침상 마급의 하한액은 9급 1호봉을 기준으로 산출되나, 우리는 주 35시간이 기준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7/8만 지급됩니다. 실제로 올해 초(22년 1월) 한 지자체의 채용공고 상 시간선택제 마급 공무원의 기본급은 1,836만 원이었습니다.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153만 원입니다. 2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여기에 신분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겸직 금지 조항을 적용받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배달 알바나, 대리운전과 같은 투잡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근속기간이 늘어나도 호봉제가 아니기 때문에 급여 인상은 제한적입니다. 임용된 첫 2년 동안 거의 비슷한 기본급을 받으며, 3년째에 접어들어야만 그나마 조금 기본급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5년을 꽉 채워 퇴직하게 되면 사라집니다. 그 경력을 활용하여 다른 지자체, 혹은 그 자리에 다시 임용이 된다면, 하한액 원칙에 따라 다시 9급 1호봉에 준하는, 153만 원의 월급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반쪽짜리 공무원입니다.      


  임기 중 출산이라도 하게 된다면, 사실상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는 하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냈다가 연장이 안됐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식입니다. 임기제 공무원에게 육아휴직이란 일을 그만둔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공공기관 소속이긴 하지만, 육아휴직과  함께 퇴직을 고민해야만 하는, 나는 반쪽짜리 공무원입니다.      


  임기제 공무원에게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는 언제나 두렵습니다. 임용권자인 구청장이나 시장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임용권자의 정책이나 정치적인 부분들에 따라 고용이 더 불안해곤 합니다. 서울시의 ‘인사운영 개선방향’이나, 이번 임기제 공무원의 일괄 연장 불가 방침을 내건 경기도의 사례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도 안정적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임기제 공무원들은 더 큰 불안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중앙정부 차원의 공무원을 줄인다는 계획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들은 그러한 이야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장 공무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임기제 공무원들을 줄이는 것입니다. 어쨌든 임기제도 정규직 공무원이니까요. 임기제 공무원들을 내보내면 어쨌든 공무원 수가 줄어드는 ‘착시현상’이 발생하기에, 1~2년 이내에 ‘작은 정부’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고,

  평가를 통해 정해진 임기를 꾸역꾸역 연장해가며,

  아이를 위한 육아휴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선거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임기제 공무원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규직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반쪽짜리’ 공무원일 뿐입니다.     





(위 이야기는 마급으로 근무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전국에 2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임기제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그중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약 1만 2천 명, 시간선택제 임기제 마급은 약 8천 명 정도로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의 70%에 해당합니다.)


#공무원 #임기제공무원 #시간선택제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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