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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 Aug 13. 2022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것

담대한 창업자들의 이야기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의 시작) / 테라오 겐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That will never work; The Birth of Netflix) / Marc Randolph


 [블리츠-스케일링]은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의지가 충만해진 나는.. 솔직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갓 태어난 망아지가 제대로 걸을 수나 있겠는가. 조바심에 답답했지만, 먼저 후들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앞서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수많은 기업 중 발뮤다와 넷플릭스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추천과 끌림. 솔직히 ‘발뮤다’라는 기업은 처음 들어봤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딱히 주위에서 쉽게 들려오는 이름은 아닌 것 같다(나와 주변 사람들의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가전제품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회고록 중 잘 알지도 못하는 발뮤다의 테라오 겐을 선택한 이유는 ‘추천’이었다.


 똑똑한 친구였다(내 생각에). 수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커리어상 창업이나 스타트업과는 꽤 거리가 있지만 실상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취향이 곧잘 맞았고 대화는 즐거웠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그 친구를 신뢰한다.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을 뒤로하고 다른 책을 고를 이유가 있겠나.


 넷플릭스를 고르게 된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비행기에서 [블리츠-스케일링]을 읽고 있었는데, 옆 사람도 같은 책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곁눈질로 힐끔 봤더니 같은 책은 아니었고, 표지가 비슷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였다. 호기심에 검색해보았더니, 찾고 있던 ‘전기’였기에 곧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두 책에서는 비슷한 울림이 있었다. 어쩌면 [블리츠-스케일링]에서 이어진 담대한 희망의 연장선 혹은 강화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가장 커다란 획은, '굴지의 기업을 이뤄낸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 '시작부터 거대하지는 않았다는 것'. 이를테면 테라오 겐은 가전제품과 전혀 연관이 없었다. 그는 음악가였다. 하지만 가전제품 좀 만들 줄 모르면 어떤가, 배우면 그만이었다. 책을 읽고, 제작소에서 무작정 만들어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시작은 DVD 우편 서비스였다.


 시간이 흘러 더 많은 사례들을 접하게 되며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도 생명공학, 의학과 약학을 독학하였으며 일론 머스크의 SpaceX 역시 꿈을 가진 머스크가 무작정 책으로 독학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이 사실 우리보다 똑똑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라는 겁니다. 이것만 깨달으시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실 겁니다.”


 잡스의 말엔 오만함이 묻어나지만, 희망과 통찰이 품어져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우리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그들'도, 앞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다.


꿈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담대한 희망을 품은 뒤부턴, 수많은 의심과 질책을 받기 시작했다. 대체로 "너는 천재가 아니잖아."처럼 주제를 알라는 식이었는데, 아마 어려운 목표를 바라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내 주제'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비슷한 꿈을 꾸길 바라며 그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너무나 끔찍하지 않은가,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것처럼 척박하고 의미 없는 세상이 있을까. 과연 그걸 꿈이라 할 수는 있는가. 그런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또한 꿈의 크기를 비교하는 행위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반면 '큰 꿈'이라는 벽을 허물고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는 현실을 마주하는 건 얼마나 희망적인가, 오로지 내면에 집중한다는 건 얼마나 자유로운가! 가능성이나 타인의 시선은 자아의 실현과 대립되며 그것들의 공존은 본질적으로 모순된다. 무엇이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내 존재의 이유를 당차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사유해나갈 용기를 심어준다. 내면에 집중하여 자유롭게 사고할 때 진정으로 스스로에게 진솔해질 테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이룰 수 있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로 바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꿈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임을 알게 된다면.


 지금의 나는 미숙하고 불안정해 보일지언정,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지레 겁먹지 마라. 누가 알겠나, 힘없이 후들대던 망아지가 눈부신 유니콘이 될지. 뭐, 딱히 유니콘이 아니더라도 어떤가! 의미 있는 삶이라면 말이다.


 "혼이여, 너는 자신을 학대하고 있구나. 그러면 너는 자신을 존중할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짧고, 네 인생도 거의 끝나간다. 하지만 너는 아직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혼에서 행복을 찾는구나!"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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