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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현 Jul 17. 2022

꿈을 꾸다, 담대한 희망!

블리츠 스케일링 / Reid Hoffman, Chris Yeh

생각지도 못한 지푸라기, 블리츠 스케일링.


 많은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펜데믹은 내게 역시 자비롭지 않았다. 능력에 비해 돈도 꽤 벌고 있었으며 성공가도라도 달리듯 거칠 것 없던 지난 일상은 절벽에 부딪힌 파도처럼 흩트러졌다. 여행과 일을 병행하던 승무원으로서의 특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삶의 무대는 지구에서 방구석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방 한켠 작은 서재엔 더 넓은 세상이 담겨 있었지만, 차분히 돌아볼 여유가 없던 나는 꽤나 불안해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일은 없고 시간은 많아지니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혼자선 해결할 수 없을 거란 직감이 들었지만, 성격 상 앓는 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속으로 끙끙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집 앞 서점을 들르게 되었다. 언젠가 빨간 머리 앤의 대사 중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집어 든 순간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단숨에, 거침없이 시장을 제패한 기업들의 비밀'이라니! 이 것만 알아내면 내 삶은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보면 참 단순했다 싶지만 당시 나는 꽤나 진지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내게 황금 동아줄이 내려온 듯했다. 그렇게, 계시라도 받은 사람마냥 홀린 듯 계산대로 향했다.


어렵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저자의 말을 빌려 블리츠 스케일링을 짧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회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하는 일이다. 블리츠 스케일링은 비행기를 조립하면서 날개를 만드는 와중에 제트엔진에 불을 붙이는 일이다." 호프먼과 예는 구체적인 사례들과 이론들을 바탕으로 거대 기업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다.


 당시 난 비즈니스에 조금도 관심이 없던 터라 관련 지식이 전무했다. 한술 더 떠 문해력까지 좋지 않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거대 기업들의 비밀이 이토록 상세하게 적혀있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이대로 책을 내려놓았다간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문해력 핑계에 동화만 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글자들을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려운 글자들이 보여준 비즈니스 세계는 더더욱 어려웠다. 저자는 비즈니스 세계의 지난함을 당혹스러울 정도로 강조하며, 험난한 여정과 장애물들을 여실히 드러냈다. 동시에 더 큰 리스크를 안아야지만 산재한 위험들을 극복해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저자의 말을 듣고 있자면, 정말로 비즈니스 세계가 '미친'것처럼 보인다. 이 책의 주제는 희망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분명히 기회는 열려있었다. 커다란 리스크들에 둘러싸여 찾아내기가 힘들 뿐.


아마 나는, 이어지지 않는 글자들 사이에서 희망을 봤으리라. 담대한 희망!


 '미친' 비즈니스 세계는 전혀 자비롭지 않았다. 시장을 지배하던 기업들이 지금의 나처럼 무너지는 사례는 흔하디 흔했다. 이런 관점에서 공룡기업들의 언더독 시절을 보는 것은 꽤나 희망적이다. 확신에 차 보이던 그들도 불안에 떨고 있었으며, 대담해 보이던 모습은 무모함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이들도 사람이었다. 때때로 무너졌고, 좌절했으며, 극복해냈다. 이들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터였다.


 두근거렸다. 흥분되는 기분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오바마의 전당대회 연설이라도 듣는 듯,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독해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이 열정을 지속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니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멈춰 서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중등 시절 나는 코코 샤넬이 부러웠다. 그녀처럼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을 뒤흔들고 싶었다. 치기 어린 목표나 어쩌면 단순한 망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꿈의 크기나 가능성이 아니다. '희망의 눈으로 바라 세상은  멋지다는 (담대한 희망! - 2004, 오바마 전당대회 연설의 표어였다)'. 세월이 흘러 현실과 타협하려던 내게, 누군가 속삭이는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엄청난 기회로 가득 차있어. 그리고 말야, 너도   있어!"


 궁금하다. 그 많던 책들 가운데 블리츠 스케일링이 나를 홀린 건 우연이었을까, 그렇게 고른 책에서 어릴 적 보았던 '담대한 희망'을 만난 건 우연이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블링크]에서 주장했듯, 무의식에서 꿈틀거리던 본성과 욕구가 반응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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