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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 Feb 01. 2023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안티프래질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려낸다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무너지기 쉬운 개체와 더욱 강건해지는 개체가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데,* 모닥불 같은 특성을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하며 반대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촛불 같은 특성은 프래질(fragile)하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티프래질한 개체는 스트레스, 무작위성, 가변성을 제거하면 오히려 약해지거나 소멸하거나 붕괴된다는 것이다(침대 위에서만 한 달을 보내면 근육이 약화되는 것과 같다). 결국 안티프래질한 개체는 스트레스를 통해 살아남으며, 나아가 더욱 좋아질 수 있다.


안티프래질은 강건함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데, 충격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받으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촛불이 될 수도, 모닥불이 될 수도 있다.


 먼저 ‘시스템에서 어떤 단위의 희생은 반드시 다른 단위(혹은 전체)의 혜택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조금 더 단편적이고 좁은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개체의 손상은 집단의 혜택이 될 수 있다’


 안티프래질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개별 레스토랑들은 프래질하다. 서로 경쟁해야 하지만, 그 지역의 레스토랑 집단은 이런 이유 때문에 안티프래질하다. 레스토랑들이 개별적으로 강건하게 유지된다면, 레스토랑 산업 전체는 침체되거나 약화될 것이고 구내식당보다 나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품질, 안정, 신뢰는 레스토랑 자체의 프래질에서 비롯된다.”라고 주장한다. 시스템 내부의 일부 구성 요소는 시스템 전체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들기 위해 프래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인생을 관망해 본다면, 프래질한 사건들의 실패를 통해 삶이라는 시스템을 안티프래질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기꺼이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약간의 합리성과 이성적 사고를 곁들인다면, 일련의 실패들을 지속적인 성장으로 변환할 수 있다. 반대로 삶에서 이러한 스트레스를 제거하려 든다면, 침대 위에서 안락한 인생을 즐기려 하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다. 팔다리는 얇아지고 지구력은 약해진다.



합리적으로 장작을 태워라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여기서 지칭하는 실패란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며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실수는 시행착오로 보기가 어렵다. 나심 탈레브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과정을 비유로 드는데, 꽤나 명쾌하다.


 ‘시행착오를 거쳐 거실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을 때에는 같은 장소를 두 번 확인하지 않는 합리성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장소를 뒤지면서 찾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쳐 추가적인 정보, 즉 어디에는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정보는 이전의 정보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갖는다. 매번 시도할수록 찾으려는 무엇인가에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것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실패했던 시도를 통해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점진적으로 알아간다.’


 또한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는 한 실패는 더 큰 재앙을 예방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은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실패를 적당한 크기로 유지하는 것이다(너무 사소한 실패는 그 자체로 아무런 영향력도 없을 수 있다).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본다.


 행복이 무작위적으로 찾아오는 일시적 감정임을 이해한다면, 인생의 목표는 그보다 가치 있는 곳에 두는 것이 옳아 보인다(행복을 목표로 삼는 것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목표란 얼마나 허무한가). 그리고 우리의 삶엔 고통이 만연해있다. 꽤나 참담하지 않나. 유의미한 삶이란 것이 이다지도 버거울 일인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니.


 마주하기 힘겨운 현실에서 선물처럼 찾아온 안티프래질이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것. 우리는 본질적으로 왜 그러한 존재이며, 그래야 하는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듯한 세상에서 다정하게 내밀어진 손길이다. 고통은 결국 악한 것이 아니라고, 절망적이지 않다고. 유의미한 인생으로의 기나긴 여정에서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아 실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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