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

몇 시 몇 분에 올지 알려주지 않는 행복

by 리앤

‘행복’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졌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라고 조언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한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행복하게!’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이뤄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됐다.

‘행복’ 관련 정책에 나라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외로움 담당관’이라는 장관을 임명해 외로움이나 고독에 대해 관리하고 있다.

부탄은 행복을 관리하는 위원회를 운영하고, 국가 총 행복(GNH) 지수를 측정해 그 어떤 지수보다 중요하게 정책에 반영한다. 가난한 나라지만 경제 성장보다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가’가 나라 운영의 기준인 것이다.

‘행복’이란 말의 한자 풀이는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이라고 한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쩐지 ‘우연히’라는 단어가 꿀꺽 삼켜지지 않고 목에 걸린다.

‘우연히’라는 말은 길을 가다 돈을 주웠을 때, 비싸서 망설였던 물건에 50% 할인 스티커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을 때, 모처럼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나 어울리는 말인 줄만 알았다.

행복이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이라면 ‘행복하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오늘도 행복을 만나는 날이길!’이라고 인사를 전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부터 뭔가 뚜껑이 딱 맞지 않는 반찬통들이 내 머릿속에서 달그락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이란 말이 한순간에 낯설어졌다. 식사 때마다 밥을 담아 먹던 그릇이 수십억 원짜리 예술품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행복이란 단어의 한자 풀이가 어떻든 상관없이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게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은 일어날지 아닐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는 행복해질 수 있다.


연기자 김혜자 씨의 일화가 유명하다.

네팔을 여행하던 중 울고 있는 장신구 판매상을 발견한 그녀는 팔찌 하나를 고르고 300달러를 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울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슬픈 표정으로 장신구를 팔던 여자는 그날 뜻밖의 ‘행복’을 선물 받은 것이다. 김혜자 씨는 장신구 판매상에게 왜 우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

훗날 비싼 값을 치르고 팔찌를 산 이유를 누군가 묻자 그녀는 “누구나 한 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날 장신구를 팔던 여자에게 300달러는 행복을 넘어 기적이었을 수도 있다.


‘내게 올 행복’은 몇 월 며칠 몇 시에 올지 약속이 없다.

하지만 ‘내가 주는 행복’은 다르다. 아무 대가 없이 그저 기뻐서 주는 소박한 선물과 마음은 받는 이에게는 ‘우연한 좋은 일’ 일 수 있다.

문득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것도, 친구가 좋아하는 광경을 봤을 때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것도, 지인의 새로운 도전에 든든한 응원을 해주는 것도, 배달 음식을 먹은 후 맛있었다는 후기를 남기는 것도 누군가에겐 선물이고 행복을 주는 일이다.

‘행복’의 화살표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쪽으로 향하게 둔다면 그 화살표의 끝이 수많은 사람을 지나 언젠간 나에게 닿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그래서 더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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