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친구야
대학 입학식 때였다.
모든 것이 다 낯선 상황이었고, 특히 우리 과는 총원 40명 중에 여자가 8명인 학과였다.
여중, 여고를 다녔던 내게
그 수두룩 빽빽한 남학생들이 어찌나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남학생들 사이에 숨은
몇 명의 여학생들을 곁눈질로 찾아봤다.
작고, 귀여운...
솜털이 보송보송한 다람쥐같이 귀여운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몇 주가 지났을 때쯤
어색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이 지나갔는지
다람쥐 친구랑 절친이 돼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공강시간에는 친구의 기숙사에 머물다 오곤 했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고민을 나눴던 것 같다.
우리 둘 다 원치 않았던 전공을 하고 있었기에
각자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학원을 다니느라....
일을 하느라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했다.
다람쥐 친구는 친구대로
'영어만이 살 길이다!'하고 영어 공부에 몰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이었던
나의 소중한 다람쥐 친구는 좀 많이 외로웠겠다 싶기도 하다.
내가 더 많이 못 챙겨주고, 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걸
30년이 다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
......
오늘은 모처럼 다람쥐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 친구는 멋진 무역회사 간부가 되어 있고,
나는 나대로 꿈을 이뤘고, 또 이뤄가고 있는 중이다.
서로의 자녀 이야기부터 사는 이야기까지.
몇 년이나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방금 만난 학창 시절의 대학 신입생처럼 대화를 나눈다.
노화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무릎이 어떻게 아프고,
영양제는 뭘 먹고 있는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사이에 30년 전에 오고 갔던
"우린 나중에 뭘 하고 살아야 할까?"
"우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까?"
"결혼은 어떤 남자랑 하지?" 등등
수많은 대화들이 둥실둥실 구름처럼 떠오른다.
"다람쥐 친구야.
그 시절 네가 내겐 가장 큰 모티브였다.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나의 모남을 네가 둥글게 해줬고,
나의 뾰족함을 네가 무디게 다듬어줬다.
고맙다 친구야.
지금도 내게 잘 살고 있다고,
나의 모든 선택에 대해 '멋진 선택'이라고 말해줘서
고맙다 친구야.
네가 바랐던 대로 외국 유학 한 번 가보지 않고도
좋은 회사의 높은 사람,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멋진 사회인이 된 것이
친구인 나는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올해는 꼬옥 얼굴 보고,
손 한 번 잡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
몇 년 전에 내가 사는 곳으로 ktx를 타고 친구가 왔었다.
역에 있는 카페에서 두 시간 대화를 나누고
친구는 다시 ktx를 타고 돌아갔었다.
올봄에는 내가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친구와 차를 마시고
돌아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본다.
오늘 아침의 통화는
참 그리운 친구와의
참 고마운 봄 햇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