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은 온다

겨울이 가면 걱정도 따라 가버리겠지....

by 리앤

어머니는 항상 걱정이 많으셨다.

비가 오면 짚신 장수 아들을, 해가 나면 우산 장수 아들을 걱정하던 우화 속 어머니와 똑 닮으셨다.


작은 아들네 집에 경사 나면 큰 아들을 걱정하셨고,

작은 딸이 승진하면, 잘 살고 있는 큰 딸의 승진을 걱정하셨다.



내가 딸을 낳았을 때였다.

어머니는 "니 동서는 아들만 있는데 어쩌냐...."라며 손녀를 품에 안은 채 울먹이셨다.


예순을 바라보는 첫째 아들이 살이 쪄서 건강에 해롭다고 걱정하셨고,

둘째 아들은 말랐다며 ‘얼마나 힘들면 살이 빠진 건가’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다.

자식들은 졸지에 돌아가며 어머니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걱정은 걱정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창의적인 해결책'은 보여주셨다.

살 빠진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서 왕복 네 시간 거리를 버스를 타고 오고 가셨다.

아들의 회사 책상에 투박한 도시락을 펼쳐놓고, 기어이 아들이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본 후에 일어서셨다. 아들이 말리고, 며느리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어머니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기 전까지 도시락 배달은 계속됐던 것 같다.


이렇게 자나 깨나 걱정을 달고 사시는 우리 어머니에겐 자식이 다섯 명이다.

걱정해야 할 몫이 다섯 배일뿐 아니라

사위, 며느리, 손자까지 포함하면 허구한 날 걱정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분명 어머니의 자식들은 훌륭하게 잘 살아가고 있건만

어머니의 걱정은 줄어들지 않고 화수분처럼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어머니의 걱정은 말릴 수도 없었기에 영원히 끝이 없을 거라고 우리 가족 모두가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의외로 ‘황소고집보다 더 센 어머니의 걱정’은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머니의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이토록 마음 아플 줄 가족 누구도 몰랐다.


어느 날부터 점점 말씀이 어눌해지던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셨고,

몇 달이 흐르지 않아 그 귀하디 귀한 자식들도 못 알아보시게 됐다.


자연히 어머니의 자식 걱정은 끝났다.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되어 버린 어머니를 보면 아직도 꿈같고 믿어지지 않는다.


한강 물은 더러우니 깨끗한 제천 골짜기 약수를 먹어야 한다며

큰 물병이 여러 개 담긴 배낭을 메고, 양손에는 커다란 물통을 들고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오시던 그 장군 같은 어머니가 맞는가 싶어

어머니의 서툰 행동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걱정 많고 잔소리 많이 하시던 옛날의 어머니가 그립고 그립다.

어머니에겐 걱정이 삶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걱정을 지우는 지우개는 오로지 ‘또 다른 걱정’ 밖에는 없었다.

사랑이었기에 더 큰 사랑으로 지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인보다는 자식 걱정으로 인생을 틈새 없이 채운 어머니의 삶은 '얼마나 애타고 고단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우리 모두가 소박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어머니의 이런 걱정 저런 걱정들조차도 얼마나 귀한 순간이었는지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예상보다도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편찮으신 어머니도 자주 뵈러 갈 수도 없게 되고,

뵈러 가더라도 손 한 번 편히 잡지도 못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만나야 하니 애달픈 건 이루 말을 못 한다.

어머니의 아기 같은 웃음도 마스크가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최근에 만났던 자영업 하는 분들은 오랜 기간 재난 상황 속에서 지치고 지쳐서 깜깜한 어둠 속으로 침몰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힘을 낼 힘조차 없다고도 하고, 이 터널이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고도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걱정에 빠져 있을 때, 뷔페식당 개업 다섯 달 만에 코로나19로 폐업한 어떤 분이 우리 모두에게 말했다.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 진짜 위기인 것이고,

아직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를 걱정하고, 나를 사랑하는 힘’을 전등처럼 밝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걸음씩만 나아가다 보면

지금은 코로나19로 꽝꽝 얼은 얼음 바닥 위를 걷고 있지만,

이내 초록색 새싹이 움트는 봄기운 완연한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순간에도 봄은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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