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병아리도 벽을 깼는데, 내가 못 깨리
“기다려야 해, 무조건 기다려. 알았지?”
친구는 ‘부화기’를 내게 안겨주면서 몇 번이고 말했다.
20일쯤 지나면 병아리가 한 마리씩 껍질을 깨고 나오는데 그때가 중요하다며 혹시 껍질을 제대로 못 깨는 병아리가 있더라도 그냥 바라만 보라고 강조했다.
조금만 더 쪼면 껍질이 전부 깨질 것이 확실한데도 달걀 속 병아리가 포기해 버리자 친구는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속껍질이 질겨져서 더 깨기 힘들 텐데…….’ 싶어서 지켜보다 할 수 없이 껍질을 까줬더니 결국 그 병아리는 며칠밖에 살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껍질 깨기를 힘들어하는 병아리를 보고만 있을 자신이 없다.
인공 부화기에서 탄생하는 병아리에게 어미 닭 역할을 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껍질 좀 까준다고 설마 큰 영향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줄탁동시’라는 말도 생각났다.
병아리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알 속에서 주둥이로 툭툭 쪼면 밖에서 어미 닭이 껍질의 어느 부분을 부리로 쪼아주며 “여기야 여기, 여길 깨면 돼”라고 방향과 요령을 알려 준다는 말이다.
병아리가 어미 닭의 소리를 듣고 세상을 찾아 안에 쪼기 시작하는 것을 ‘줄’,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병아리 탄생을 돕는 것을 ‘탁’. 즉, 안과 밖에서 함께 노력해서 위대한 탄생이 이뤄진다는 사자성어다.
줄탁동시 어쩌고 하며 어미 닭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말하는 내게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미 닭은 부리로 알을 툭툭 쳐서 이 부분을 공략하라고 신호만 보내지 깨 주진 않아. 마마보이는 있어도 마마 병아리는 없는 거지.”라고 말하며 “아이들도 병아리처럼 강하게 키워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요즘 알들을 부화시키고 병아리가 자라는 걸 보면서 세상과 삶을 다시 배우고 있다던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사업을 할 때도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다 해주기보다는 아이들, 그리고 직원들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시 잊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누구에게서든 ‘스스로 위대한 탄생을 이룰 기회’, ‘성취감을 맛볼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 또한 내 앞의 벽들을 콕콕 쪼는 일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우리 모두는 아직 자기만의 알 속에서 더 큰 세상을 향해 부리질을 하고 있는 병아리일지도 모른다.
누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고만 있기보다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껍질을 쪼아 깨뜨리고 나온다면 작은 알 속이 아니라 ‘온 세상이 내 것’이 된다.
이 사실을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병아리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장애물은 단단히 막혀 있는 벽 같이 느껴져도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깨진다. 달걀 껍데기처럼.
어쩌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콕콕 두드린 부리질에 오랜 시간 고대하던 새 세상이 활짝 열릴 수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의 벽을 부수며 나아갈 단단한 부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
인터넷에서 본 어느 학교 급훈이다.
병아리가 될 것인가, 프라이가 될 것인가? 선택은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