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중심으로
이 글을, 상실을 깊게 느끼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바친다.
상실을 느끼기에 완벽한 계절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낙엽과 은행, 그리고 씁쓸한 공기의 흐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질문한다.
오늘은 상실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한다.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떠나버리는 이 상실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두가 조금의 상실을 느끼고 있음에 확신한다. 상실 없이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실을 느끼는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계절의 향기, 혹은 특정한 시기 속의 내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은 정말 슬프게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설계가 되어있는 듯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지만, 나는 이번 여름, 특정 도시와 그 속에 존재하는 친구들에 대한 상실감에 휩싸여 뜨거운 태양을 노려보았다. 교환 학생 시절에 만난 소중한 모든 것들을 한국에 온 순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고, 그것은 나에게 큰 아픔을 안겨주었다.
상실을 겪으면,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거나, 혹은 현재의 순간들에서 찬란하지 않은 빛을 보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상실로부터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고, 혼자 사유했다. 어떻게 하면 상실을 가장 빠르게 없앨 수 있을까?
하지만 늘 그랬듯, 내가 세상을 향해 품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라며 더 큰 상실을 느끼던 나는 도서관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한 시대를 뒤덮는 상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지,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만큼 깊은 심연 속으로 빠진 것일지, 의문을 품으며 책을 끝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상실을 완벽히 제거할 방도는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상실을 나름 괜찮게 마주할 일말의 실마리, 즉 힌트를 얻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읽을 때, 줄거리가 재미없고, 문체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해서 책장을 쉽사리 덮어버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작가들은 인생의 아주 중요한 진리들을 책 속 여러 문단에 숨겨놓고, 그것을 독자들이 찾기를 원한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약간의 재미없는 터널을 지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상실이라는 존재에 대한 힌트를 얻었고, 그러한 구절들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구절 공유에 앞서 아주 짧은 설명을 덧붙이지만, 와타나베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 나오코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미도리는 현재의 와타나베의 대학교 생활 속에 들어온 여성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 대한 상실을 느끼고 있다. 중요한 줄거리의 요소를 알리는 수 있는 단어가 있어서, 그 단어만 제외하고, 인용하였다.
“와타나베가 만일 나오코에 대해서 뭔가 아픔 같은 걸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그 아픔을 남은 인생을 사는 동안 계속 느끼면 돼. 그래서 만약 배울 게 있다면 거기서 뭔가 배우면 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도리와 둘이서 행복해져야해. 당신의 아픔은 미도리와는 관계가 없잖아.“
그렇다. 만약 우리의 몸이 특정한 크기의 아픔을 꼭 담고 있어야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면, 그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면 된다. 그저 상실의 아픔을 빠르게 없애는 것에 급급했던 과거 나의 모습처럼 조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깊게 상실하여 심연으로 빠지는 순간의 주인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희열, 위로를 느꼈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싫기도 했는데, 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이유는 책을 덮은 후에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는, 상실의 심연으로 빠져 자책하는 주인공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조금 특이하지만 아름다운, 그의 현재에 존재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공은 앞으로 심연을 안고서, 새로운 세상으로, 즉 현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도를 아는 삶을 살 것이다.
그 심연을 바로 내동댕이치고, 무지개와 햇빛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갈 수는, 당연히 없다. 우리는 상실을 그저 학창 시절의 신발주머니처럼 들고 배움을 향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살다가 약간은 그 주머니 때문에 슬퍼지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하고,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상실 가득한 주인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이유는, 나도 내가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처럼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상실을 품고,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나의 모습. 상실 때문에 현재에 나에게 다가온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우리는 때로는 상실 통해 더욱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은, 그 때문에 현재에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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