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잎을 먹고 무명실을 뽑아내는 일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by 비읍비읍

유튜브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아델(Adele)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을 보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델이 저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가수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올해 서른여덟이 되는 내가 어릴때도 슈퍼스타였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한 10~12년 전즈음 자격증 공부를 하며 독서실에 쳐박혀 있는 동안, 내게 한 줌의 즐거움을 주던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노래가 나왔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 스타> 시즌 1에서 아마도 박지민 씨가 ‘Rolling in the Deep’이 거의 교과서처럼 부르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던 것을 기억해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모두가 아는듯한 팝송을 부르길래 으레 내가 모르는 어느 옛날 시점부터 슈퍼스타인 사람의 노래인가 보다 했던 것이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그때 그 노래가 수록된 앨범 제목이 21이며, 그 숫자는 가수인 아델의 나이를 기리며 결정된 숫자였던 것이다.


그녀가 스물한 살, 누군가는 아직 삶의 방향조차 잡지 못했을 그 나이에 그녀는 이미 자기 생의 가장 시린 단면을 노래하는 것으로 글로벌리한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아델의 커리어를 들여다보니 '요즘 유행'에 발을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 (2008): 리아나와 비욘세의 팝이 주류일 때, 아델은 16살에 쓴 'Hometown Glory'를 들고 나와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고향을 떠나기 싫다는 사춘기 소녀의 고집스러운 감성이 담긴 데뷔작이었다.


21 (2011): 레이디 가가의 일렉트로닉 팝이 차트를 지배하던 시기, 아델은 화려한 비트 대신 피아노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이별의 상실감을 노래했다. 'Someone Like You'는 그녀의 실제 연애담이었고, 그 지극히 사적인 슬픔은 전 세계 3,100만 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5 (2015): 4년의 공백 후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발라드였다. 'Hello'는 과거의 자신과 화해를 시도하는 성숙한 시선을 담았고, 이는 실물 음반 시대의 마지막 신화로 불리게 되었다.


30 (2021): 가장 최근의 기록인 이 앨범은 더욱 처절할 정도로 개인적이다. 이혼 과정에서 겪은 죄책감, 아들에게 엄마의 선택을 설명해야 하는 고통(Easy On Me)을 여과 없이 담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녀는 "대중이 무엇을 원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내 나이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가?"에 집요하게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빌려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아델은 자신의 커리어 전체로 증명해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뽕나무 잎을 먹고 무명실을 뽑아내는 일


이 지점에서 내 브런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일상의 경험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글로 올리는 것을 기본 구조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창작을 '애벌레가 뽕나무 잎을 먹고 무명실을 뽑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널린 뽕나무 잎(책, 영화, 정보)은 누구에게나 같다. 하지만 그 잎을 먹고 난 뒤 어떤 결을 가진 무명실을 내놓느냐는 오로지 창작자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내 몸 안에서 어떤 화학 작용을 거쳐서 어떤 해석의 실을 뽑아내느냐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나만의 독창적인 무언가가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곤 한다.


하지만 가끔 흔들릴 때가 있었다. 내가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거나 큰 흥미가 없는 주제임에도, ‘이건 왠지 대중 픽(Pick)일 것 같아서’ 혹은 ‘요즘 트렌드라서’ 내 창작의 영역으로 억지로 끌어오려 했던 순간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뽑아낸 실은 묘하게 힘이 없고, 제 색깔을 띠지도 않았다. 내 몸 안에서 충분히 녹아나지 않은 뽕나무 잎은 결코 단단한 무명실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방식에서 출발하는 공통의 무언가


아델의 방식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결국에는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성공 사례담을 본 것 같아서다. 물론 무작정 내 스타일의 이야기를 내뱉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제의 차이가 아니라 ‘깊이의 차이’다.


보통 '독창성'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는 창의성(또는 독보적임)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아델이 노래한 이별이나 후회는 사실 아주 흔한 소재다. 그녀가 대중과 맞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흔한 감정을 누구보다 집요하고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나만 느끼는 줄 알았던 아주 사적인 감정을 바닥까지 파 내려가면, 역설적이게도 그곳에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감정의 뼈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결국 독창성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명해내는 재주가 아니라, 내가 붙잡은 서사가 보편적인 진실에 닿을 때까지 밀어붙이는 '성실함'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렇게 그녀의 시선이 깊어질수록, 사적인 서사는 단순히 ‘그녀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감정 구조’를 건드리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 아닐까.


결국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족집게처럼 골라내려 애쓰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만의 시선을 더 날카롭고 깊게 다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깊이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내가 뽑아낸 무명실도 결국 대중의 취미와 맞닿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취미로 글을 쓰는 나도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하물며 SNS 등에 업으로써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는 사람들의 고민은 얼마나 클 것인가. 하지만 아델의 사례가 말해주듯, 집요하게 내 방식을 고수하고 깊이를 더하는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 해석의 방식, 내가 붙잡고 있는 주제를 조금 더 믿고 가도 좋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깊이가 곧 차이를 만든다는 그 당연한 진리를, 아델은 그녀의 인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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