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한테 졌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노출이 안됬을뿐.

by 비읍비읍
숏폼 컨텐츠에 부정적인 면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미국은 2024년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표면적으로는 안보 이슈였지만 실제 논의의 핵심에는 청소년 보호가 있었다. 호주는 2024년 말, 세계 최초로 만 16세 미만의 SNS 가입 자체를 법으로 금지했다. 영국은 온라인 안전법을 통해 플랫폼이 미성년자에게 알고리즘 기반 추천 피드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프랑스는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프랑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만 15세 미만의 SNS 접근을 부모 동의 없이는 차단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방통위와 여가부가 청소년 숏폼 규제 논의를 이어가고 있고, 틱톡·유튜브·인스타그램에 대한 청소년 이용 시간 제한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아직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은 뇌에 5초짜리 도파민 자극을 무한 반복으로 주입하면 집중력, 충동 조절, 감정 조절 능력이 구조적으로 손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문제지, 나 같은 사람은 좀 다르지.


모바일 네이티브로 태어나 자란 세대에게 스마트폰을 끊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들에게 SNS는 공기고 숏폼은 그 안에서 숨 쉬는 방식이다. 그러니 규제 논의도 자연스럽게 그쪽에 집중된다.


반면 나 같은 적당한 나이의 아저씨들이 유튜브 보고 인스타 스크롤하는 건 그냥 생활의 일부로 취급된다.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본인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어른이니까. 자제력이 있으니까. 롱폼도 잘 보니까. 그리고 나도 그 어른들 중 하나였고, 나 역시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롱폼 편이었다. 유튜브 30분짜리 다큐, 1시간짜리 강연, 팟캐스트. 이동할 때는 차를 몰았으니 영상보다는 오디오가 자연스러웠다. 숏폼을 즐겨볼 환경 자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여하튼 나는 좀 다르다고. 숏폼에 휩쓸리는 사람들과 나는 결이 다르다고.




최근 자차 출근이 아니라 지하철로 약 2주간 출퇴근을 했다. 아주 이른시간에 가야하는게 아니었기에 지하철이 꽉꽉 차는 그 시간대에 타고 다녔다. 만세- 자세를 하지 않는다면 성추행범, 공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으로 내몰리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내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다음역에 내려야한다며 문도 안열린 상황에서 인파 속을 비집는 누군가가 있는 순간에는, 내몸 뿐만 아니라 네몸도 그 누구의 것이 아닐것이다. 만원인 지하철 상환 뿐만 아니라, 몇 정거장을 이동한 뒤 환승을 몇 차례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이 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되기만을 바랬다.


평소라면 '이 시간을 어떻게 잘 써먹지!?'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지금 이 이동시간이 내 기억속에 없으면 좋겠어'


하지만 롱폼 영상을 이어보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책을 꺼내 들기엔 사람에 치인다. 그냥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고 싶다는 피로감에 나도 모르게 그 틈으로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고, 눈앞에는 쇼츠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느 순간 내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빌리 아이리시가 저스틴 비버의 열혈 팬이라는 것.

사브리나 카펜터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심권호 선수가 이제 결혼하겠다며 종편 예능에 나왔고 거기에 최홍만이 함께한다는 것.

이프아이라는 중소 아이돌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돌 세계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구분이 실재한다는 것.

이강인의 드리블과 메시 전성기를 비교한 클립.

강소라 배우의 자차 편집본.

내가 본방으로 봤던 나솔사계의 특정 장면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잘라낸 클립에 달린 댓글에, 나도 동조하며 출연자를 흘겨보고 있었다는 것.

이혼숙려캠프에 나오는 누군가 남편의 충격적인 과거.

시그니엘 81층에서 배달을 시키면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이걸 나는 왜 알게 된 거지.

처음엔 그냥 시간 낭비를 했다는 자책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책보다 더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이 사람들을 조금 무시했다. 숏폼에 빠져서 시간을 날리는 사람들을, 자극적인 클립에 댓글을 달며 출연자를 흘겨보는 사람들을,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걸 그냥 받아먹는 사람들을. 절제하지 못하는 거라고, 습관의 문제라고,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빌리 아이리시 팬 관계를 알고 있고, 심권호가 최홍만이랑 예능에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솔사계 출연자에 대한 조롱에 무응답으로 동조했다. 환경이 만들어지자 나도 정확히 그 사람들과 같아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걸 인지하고 불편해할 수 있다는 것뿐인데, 그게 과연 대단한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인지했다고 해서 멈춰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이 정보들이 내 삶에 어떤 쓸모가 있었나 반추해본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머릿속에 남는 건 없는데 시간은 사라졌다는 사실만 뇌리에 남아있다. 그저 뇌가 멍해질 때까지 스크롤하다가 문득 인지해버린 내 모습이 낯설었다.




나는 내성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숏폼에 노출될 환경이 아니었을 뿐이고, 그 환경이 만들어지자 나도 똑같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 세계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클릭률과 체류시간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수년간 갈아온 알고리즘이, 심심풀이로 시간을 때우려는 사람 하나를 뚫어내는 건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숏폼 자체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지도 모르는 내용이 5초 단위로 끊임없이 들이밀어지고, 나는 그냥 손가락만 올리면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이 구조를 피하고 싶다는 건 분명하다.


지금 내가 겨우 버티는 방법은 의도적으로 책을 펼치고, 의도적으로 긴 영상을 찾고, 지금 이 글처럼 뭔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는 것이다. 이게 해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는 않다.


그냥 숏폼이 파고들어 쑤셔놓은 빈공간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메꿔놓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피곤하면 또 손이 움직인다.

어쩌면 초원 위 표범처럼, 그 알고리즘은 내가 지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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