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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 see u soon. 치앙마이

다음에는 '한달살기' 할 수 있기를.

by 비읍비읍

치앙마이에서 마지막날이 밝았다.

4박 5일 내내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는데 마지막날이 되니 비 소식이 있다. 아침에 심각한 수준의 폭우가 내렸는데 그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에서 깰 정도였다. 아내와 나는 테라스에 나와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몇일간 건조했던 날씨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2시간 바짝 비가 쏟아지더니 다시 쨍! 하게 날이 개었는데 동남아는 건기에 맞춰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강해졌다.


이젠 한국의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고 있다는 기사를 봐도, 그곳이 어디었더라~ 할 정도로 태국인이 다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일이라는 걸 살면서 해본 적이 있나~ 할 정도로 휴가에 적응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이번 치앙마이 여행이 너무 만족스러웠기에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모든 일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니 아련해진다. 치앙마이에서 마지막 조식이라고 생각하니 꼭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조식 메뉴를 골라보려고 하는데 베이컨/소시지가 아니라 현지스타일 음식도 주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오 소이의 광팬이 된 나와 아내는 카오 소이를 주문해서 먹었다. 이번이 세 번째 카오 소이를 먹는 것이라서 마치 전문가가 된 것처럼 맛을 평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위를 매기지는 못했지만 호텔에서 먹는 카오소이도 정-말 맛있었다.


우리가 4일 동안 지정석처럼 앉았던 테이블과 의자를 카메라에 담으며 치앙마이에서의 조식과 인사를 했다.

KakaoTalk_20250329_173645270.jpg 조식 지정석


사원들이 많은 관광지 치고는 너무 사원 투어를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올드타운 내 서쪽에 위치한 사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 사원이나 저 사원이나 그게 그거지- 라고 생각은 들긴 했지만, 관광지별 특성에 맞는 여행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편집증이 발휘되어 가기로 결정했다.


'왓 프라싱' 이라는 사원을 방문했는데, 사원 2회 차 방문러들 답게 베테랑처럼 관람했다. 신발을 벗을 때 벗고 각 조각상 별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내면서 말이다. 이 사원에는 특이한 게 있었는데 이미 돌아가신 고승들을 박제한 것인지, 마네킹 같은 걸 만들어놓은 건지 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가까이서 보는데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챗gpt에게 물어봐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절한 스님들은 죽어도 몸이 썩지 않는다고 했다가 > 꽤 고절한 수준이면 박제를 하거나 마네킹을 만들어주는 걸로 변화했다고 한다. 북한이 초대형 동상 제작이 월드클래스라고 하는데, 인물 박제는 왠지 태국이 월드클래스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KakaoTalk_20250329_173645270_01.jpg 조각상들은 아니고 살아계신 어린 승려분들

디테일한 조각들의 아름다움을 관람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살아있는 스님이 웃으며 앉아있는 것이다. 40대로 추정되는 분이셨는데, 인자하게 앉아있다가 헌금?후원금?을 그분 앞 바구니에 넣으면 팔찌를 채워주면서 덕담과 함께 머리에 물을 착! 뿌리는 행위를 하고 계셨다. 뭔가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아내와 나는 100바트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어디서 왔는지- 묻고 중얼중얼 거리며 팔찌를 채워주는데 신성한 경험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찾아본 바로는 여행이 끝나고 돌아갈 때까지 행운이 함께하길- 이라는 축복을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괜히 기분도 좋아지면서 안 그래도 여름에 팔찌 같은 거 해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KakaoTalk_20250329_173645270_02.jpg 집에 잘-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아내는 여행온 김에 기념 삼아 현지 공예품을 사가길 원했다. 나도 매우 동의하는 바 이기 때문에 올드타운 외곽에서 100m 정도 바깥에 있는 공예샵에 방문했다. 내 눈에는 이거나 저거나 유사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내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내기 시작했고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을 찾아냈다. 음식값에 비하면 비싼 것들이었지만, 팔찌-라는 부분으로 생각해 보면 매우 저렴했다.


관광지를 그저 쳐다만 보는 것보다 현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들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목적과 너무 부합한 가게였다. 나는 사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한달살기를 한다면 팔찌 두 개는 두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번에 다른 여행지를 가게 된다면, 오히려 첫째 날 첫 번째 코스로 현지 공예샵에 들러 여행 때 차고 다닐 장신구를 사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되겠다 싶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내와 앨리스 키친 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이름만 서양식을 팔 것 같은 곳이고 실제로는 태국 현지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특히 똠양꿍 맛집이라는 것에 끌렸는데 똠양꿍과 쏨땀, 볶음밥 모두 맛있었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니 만석이 되었는데, 조금 늦게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KakaoTalk_20250329_173645270_04.jpg 코끼리 셔츠맨과, 아내 양팔에 걸린 팔찌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과일을 조금 부족하게 먹은 것 같아서 과일을 기깔나게 파는 가게를 찾아 떠났다. 며칠 전 먹은 것처럼 요거트 위에 다양한 열대과일이 올라가 있는 걸 파는 곳이었는데, 장기간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가득 차있는 걸 보니 아주 신뢰가 갔다. 가게에서 제일 비싼! 모든 과일이 다 들어간 것 같은! 메뉴를 주문했는데 좀 과했던 것 같다. 베테랑 여행자처럼 단순한 거 하나만 딱! 시키고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아직 비기너-인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익숙해진 '과하게 먹기'를 이번에도 하게 됐다.

KakaoTalk_20250329_173645270_05.jpg 여기서 젤 비싼거 두개 주세요!



비행기 시간이 밤 10시이고, 공항이 택시를 타면 20분이면 가는 거리에 위치해있어 남은 하루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계획의 일환으로 아내와 저녁에 선데이 마켓을 들리기 전에 마사지를 받기로 결정했다. 블로거들이 추천해 준 마사지샵에 들어갔는데 이미 꽉 차있었고 예약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꽤 걸어오느라 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사지샵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개탄스러웠다.


이때즈음 나는 GLN과 트레블월렛 실물카드, 현금(바트)를 어떤 비중으로 돌려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치앙마이가 물가는 싸지만 ATM 수수료는 거의 만원이 나오는 곳이라서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다. 괜히 많이 인출했다가 못쓴 현금을 원화로 환전하지도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안 되지 않은가. 경우에 따라서 QR인식이 안돼서 GLN을 못쓰는 업장도 있었고, 카드는 받지 않거나 별도의 수수료를 받는 곳들이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먹고 마시고 경험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어야 했는데, 뭔가 결제수단이 딱! 떨어지는 기가 막힌 소비가 내 머릿속에 가득 차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마사지샵은 자리가 있었는데, 상담실장 같은 분이 아주 영업을 잘했다. 말도 잘하고 영어도 한국어도 섞어 쓰면서 한국인 전용 메뉴판으로 마사지 코스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현금과 신용카드를 적절히 섞어서 결제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기도 했다. 그런 영업력에 홀라당 넘어가서 저렴한 마사지의 나라에서 지불하기 어려운 수준의 금액을 지불했다. 마사지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코스를 선택했는데 나와 아내 둘 다 너무 만족했다. 1인당 300바트가 마사지의 상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내니 많이 잘하시더라.

체구들은 작았는데 어쩜 이렇게 손맛이 야무진가 싶을 정도로 시원했다. 마사지의 원조 타이마사지는 타이에서 받아야 하는구나 하며 감탄했다. 지난번에 세부 보홀에서 받은 필리핀산 '타이 마사지'는 별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태국에서의 타이마사지는 달랐다.


굉장히 럭셔리한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길거리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치앙마이에 단 하루를 있어야 한다면 일요일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선데이 마켓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날 다녀온 찡짜이 마켓 / 코코넛 마켓 / 나이트 바자를 다 통틀어도 선데이 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람도 진짜 많고 북적북적였고 파는 제품들의 퀄리티도 상당히 좋았다. 우리의 숙소가 선데이 마켓의 시작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동안 정말 좋은 위치에서 지냈구나 싶어 더 기분이 좋아졌다.


공항으로 가기 전 저녁식사를 해야 했는데, 타이밍도 애매하고 현금 잔고가 애매했다(카드를 안 받는다면..). 나는 미리 걱정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숙소 앞 사거리에 있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꽤 깔끔한 식당이었기에 현금만을 고수할 것 같지 않았고 여행하는 내내 '저기 한번 가봐야 하는데'라고 했던 곳이었다. 카드를 받는 식당이었기에 아내와 나는 치앙마이에서 마지막 식사를 무엇으로 할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팟타이를, 아내는 망고찰밥(Sticky rice with mango)을 선택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치앙마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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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마지막 식사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야외에 테이블이 6개가 있었는데 딱 우리가 잡은 테이블만 비를 피할 지붕이 있었고 나머지 자리는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실내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것도 참 운이 좋다고 서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경치도 좋고 음식도 좋은데 결제도 해결되고 삼박자가 맞는 마지막 식당이었다. 4박 5일 동안 비 한 번도 안 오더니 딱 마지막날 마지막 일정 때만 비가 오니, 날씨도 우리가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초스피드로 날아갔다. 분명 인천에서 출발할 때는 6시간 반이 걸렸는데, 돌아갈 때는 4시간 밖에 안 걸리는 게... 말이 되나?

나는 귀국한 뒤에 바로 출근할 예정이었어서,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다. 아내가 혼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때문에 최적의 동선을 짜야해서 고심했었는데, 일찍 한국에 도착하게 되니 모든 게 해결이 될 수 있었다. 여행의 마무리까지 나이스하게 진행되니 치앙마이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는 우리 가족이 다시 방문하게 되어 이번 여행을 곱씹어 볼 날이 오길 바라본다.

KakaoTalk_20250329_173645270_08.jpg 무사히 돌아오게 해준 감사한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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